한국일보

[여성의창] 이민자의 ‘빽’

2023-01-04 (수) 김선원(한국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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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올 한해는 개인적으로 건강과 신변에 크고 작은 우환들이 생기기도 했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건강에 적신호가 생겨 안타까움을 견디던 시간들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회복과 쾌유로 마무리가 되어 과거로 회자할 수 있는 이야기 거리가 되어가는 중이다. 돌이켜보니 본인의 일처럼 어려움을 덜어주는 좋은 분들이 나타나서 일상을 영위하고, 회복을 앞당길 수 있었음에 고마운 마음이다.

연초에는 멀리 있는 가족들로부터 건강이 심각하게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고 코비드로, 직장으로, 미국에 있는 일상으로 직접 가보고 돌보지 못해 마음만 졸였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한호흡 가다듬으려 할 때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로 삶이 내 원함과 바람에서 멀리 돌아가는 듯 보이던 상황을 맞았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가족 일원이 수술과 입원을 겪을 때 병간호도 변변히 돕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불편했다가, 갑자기 내 몸이 불편해지고, 재활이 불확실한 상황에 닥친 경제적 예측불허 상황까지 더한 육체적 고통이었다. 직장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 천직이라 여기던 직장 일까지 복잡한 다이내믹이 생겨 머릿속까지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동네에 다행히 오랫동안 돌봐주셨던 한의사 선생님이 혜성처럼 나타나 교통사고 시에 처리를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아픈 곳도 미리 알아서 돌봐주셔서 회복을 앞당겨 주고 계시다. 시기적으로 특히나 6년간 준비했던 아버지 10주년 유작전을 한달여 앞두고 일어난 일이어서 마음은 더 무거웠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강행하여 잘 마무리하고 아버지가 그토록 말씀하시던 전생애 작품 도록을 만들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도움, 특히 아버지의 친구분들의 도움이 있었고 어머니의 책임높은 지원이 컸다.

범띠 여자에 호랑이가 한창 활동하는 새벽녘에 태어난 나는 친할머니로부터 항상 시집을 늦게 가야 한다고 권유를 들었다. 호랑이는 실질적으로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사주가 많다고 하더니, 이역만리 타국에서 마음만 졸이고, 아니면 홀로 아프고 서러운 일도 일어나는 거 아닌가 운명 탓도 늘었던 한해였던 거 같다. 며칠 전에는 22년을 같이 돌아온 친구들을 불러 한국 음식을 한상 차려 먹었다. 22년을 각자, 아니 그보다 20년 30년 돌아본 이민 선배님들의 사연을 들어보니, 운명 탓이 아니라 그냥 내가 선택한 이민자의 삶이 그런 거다.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을 기다리다 보면 좋은 날도 생기려니, 이렇게 얘기할 벗이 있어 힘든 날도 그럭저럭 버틸 희망이 나타난다. 2023년 거시경제 지표들은 어둡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렇게 친구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하루하루 할일 열심히 하다 보면….

<김선원(한국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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