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마음의 계영배

2023-01-02 (월)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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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하던 공부를 마치고 나니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드라마 한 편을 보았다. 사극이었는데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극 중에 ‘계영배’라는 술잔을 가지고 후궁의 아들을 훈계하는 장면이 있었다. 술잔이 참 특이하게 보여서 찾아보았다.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천자에게 금욕의 가르침을 주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 의기는 밑에 구멍이 뚫려 있어 차나 술을 적당하게 따르면 그대로 남아 있지만 8할을 넘어서면 모두 밑으로 새어 버리게 한다.

한국의 경우도 조선시대에 우명옥이라는 도공이 계영배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설백 자기를 만들어 큰 부를 얻게 되고 이로 인해 거만해진 우명옥이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만들어 낸 작품이 계영배라 한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으로 중국의 것과 마찬가지로 7할이 넘게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버리고 7할까지만 채우면 온전하게 남도록 만들어진 신비한 잔이라 한다. 후에 거상 임상옥이 이 술잔을 소유하고, 계영배를 보면서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며 큰 재물을 쌓았고 그 재물들을 백성을 위해 내놓고 가객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옛 조상들의 슬기가 참으로 돋보인다. 신기한 술잔을 만든 것도 그렇고 그런 물건을 곁에 두고 보면서 자신을 경계하는 삶이 그렇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쉽게 돈 버는 방법을 찾고, 욕심이 지나쳐서 나눌 줄 모르고, 전통적 가치관은 고리타분하다 외면당하기 일쑤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지만 빠르게 변하고 앞서가는 세상에서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하고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있음을 우리는 조상의 슬기로부터 배우고 기억해야 한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한 해 동안 이루고 싶은 소망을 품기도 하고, 어떻게 이뤄갈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계획을 실천하지 않으면 소망은 그저 꿈일 뿐이지만, 작은 계획이라도 하나씩 실천한다면 소망은 이루어질 수 있고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계영배’의 7할 이상 채우지 않는 것을 보면서 새해에는 자신을 위한 지나친 욕심을 품지 말고 모든 일의 7할만 채우면 어떨까. 그러나 이웃을 위한 배려와 사랑, 따뜻한 마음은 차고 넘쳐 주변에 흘러넘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은 줄이고 사랑은 넘치는 마음의 계영배. 올 한 해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고 아름다워질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부족하지만 오늘, 나부터 그렇게 살아가기를 다짐해본다.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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