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응급실

2022-12-30 (금) 안세라 (주부)
작게 크게
오랜만의 한국 여행으로 남편과 나는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어렸을 때부터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꿈이었는데, 결혼을 하고도 6년이 지나서야 그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마지막날 밤 저녁으로는 맛있는 석화를 남편과 함께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그리고 도착한 부산. 남편은 친정으로 돌아가는 내내 어지럽다고 했고, 집에 도착해서는 설사와 구토를 반복한 나머지 응급실을 가게 되었다. 마지막날 저녁에 먹은 생굴이 급성 장염을 일으켰다며 수액과 처방전을 받았다.

남편의 응급실 접수부터 함께한 나는, 환자대기실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기실 한쪽 구석에 젊은 남녀 다섯명 정도가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방금 응급실에 입원한 엄마를 누가 집에 가서 모실 건지에 대해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환자분의 자녀분인듯 보였는데 각자 서로의 사정을 큰목소리로 어필하며 못 모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다음에는 노년의 한 할아버지가 경찰들과 함께 들어오시더니 응급실 접수를 부탁한다 하셨다. 그런데 응급실은 그 업무 특성상 일반병원과 달리 응급치료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그 금액이 십만원을 넘을 수도 있다는 병원측의 설명을 듣자마자 고래고래 큰소리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셨다. 자신은 기초생활보급자로 매번 680원만을 내고 항상 병원을 이용했는데, 갑자기 무슨 말이냐며 욕을 하더니, 급기야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셨다. 경찰은 분명 그 할아버지를 도와주고 싶어서 병원까지 모시고 왔는데 지금은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운 다음에는 배가 너무 아프다며 병원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계셨다. 그러시더니 병원이 아픈 환자를 이런 식으로 대한다고 다시 욕을 시작하셨다.


또 어떤 분은 응급실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막상 그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족은 그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차가운 대기실 바닥에 쓰러지는 분도 계셨다. 크리스마스이브라 가족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의 갑작스런 이별인듯 보였다.

나는 남편이 수액을 맞는 그 짧은 시간동안 본 많은 응급실의 모습에 너무 슬펐다. 슬프다기보다는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대는 한평생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인생의 황혼기에 이런 모습입니까. 어떻게 자식과의 관계를 맺어오셨길래 이런 모습으로 병원에 계십니까. 어떻게 하시다 당신은 이렇게 인생의 끝을 맞이하고 계십니까 왜…’ 내 나이 마흔, 한국에서 접한 낯선 세상의 어두운 모습에 가슴이 많이 시린다.

<안세라 (주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