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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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 “지독한 사랑”

2022-12-2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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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들어 중고등학교와 대학 동창회의 송년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간 온라인으로만 안부를 주고받다가 오랜만에 대면 동창회를 하니 다들 즐거워한다. 얼마전에 카톡에 오른 한 동우회의 소식을 전한다.

지난 8월, 60대초반 나이에 세상을 등진 한 동우 A가 있다. 그는 대학시절 학교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4년간 신문사 선후배들과 뜨거운 삶을 살았다. 1980년대 초, 서울의 봄 대자보를 통해 군사독재에 맞서다 5.18 수배명단에 올라 피신한 적도 있고 해병대에 복무하여 국방의 의무를 끝내고 제대후에는 복학생으로서 후배들 술 사주면서 대학을 마쳤다. 서부이촌동 집에서 그의 어머니는 수많은 선후배들 밥을 해주었고 어떤 궂은일도 뒷바라지 했었다.

그런데 졸업후 대형 노래방 사업에, 찜질방 사업까지 벌이는 사업마다 실패하면서 본인은 물론 주변인들에게까지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주면서 가파르고 팍팍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 적십자병원에서 5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에 동우들 100명이 함께 한 카톡에 회장이 글을 올렸다.
“아까운 나이로 불귀의 객이 된 후배가 너무 가여워, 이제 그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기에, 그를 대신하여 그가 살면서 상처주고 힘들게 했던 분들에게 언감생심 용서를 청합니다. 죄인으로서 저 세상을 보내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부터 함께 했던, 저보다 어린 후배를 앞세우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낍니다. 함께 그와 했던 분이라면 떠난 그를 많이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더 감동적인 것은 물질적 피해자인 후배가 올린 글이다.
“2002년 월드컵이 열렸던 그 해 여름, 제 아버님 빈소에 찾아오셨지요. 아내는 말했습니다. 문상객이 빨간 양말 신고 오는 건 처음 봤다고,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잖아 하고 말했지요.

그랬던 우리는 2007년 이후 형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단 하루도 형 생각하지 않은 적 없었습니다. 전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 제 아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젤 나쁜 놈은 저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을 울고 울게 만들었으니까요.

그 탓을 전 형께 돌리며 15년 살았습니다. 먼 그대 같은 단톡방을 통해 부고를 접했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이런 식으로 얼굴을 내밀다니요. 이건 반칙입니다. 해병대가 할 짓이 아닙니다. 신문사 기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요.

“용서를 청합니다. 고인이 죄인으로 저 세상을 보내기가 싫기 때문입니다”라는 선배의 글을 보았습니다. 안 된 건, 용서받지 못한 자가 아니라 용서하지 못한 자입니다.
아플 때 찾아보지 못해 미안합니다. 천국에서 괜히 천사들한테 보증서 달라 하지 마시고, 이젠 편하게 쉬세요. 우리는, 지독한 합리화가 지독한 사랑이 될 수도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물질적 피해자인 그 후배는 아내에게 미안하여 다시는 동우회 모임에 나올 수 없었다.
그 끈끈한 정이 뉴욕 동문회 모임마다 있다. 이민 초창기에 만나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결혼식,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삶을 같이 하고 있다.

이민생활의 힘든 점을 의논하고 도움을 주고받다보면 돈 문제에 얽히기도 한다. 동업을 하다가 의가 상해 남남이 되기도 하고 돈을 빌려주고 받다가 다시는 안보는 사이가 된다. 이런 일들이 생기다보면 동문회 모임도 반으로 쪼개져 버린다.

물질적 피해자에게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하기가 쉽지 않지만 다같이 늙어가는 길,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데 그냥 모른 척 하고 “이 해가 가기 전에 밥 한번 먹자”고 전화할 수는 없을까.

‘사랑하라, 사랑은 용서보다 거룩한 용서/ 기도보다 절실한 기도/ 아무 것도 가질 수 없고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아도/ 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할 때 사랑하라.’ (정일근 시)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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