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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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추억의 정리

2022-12-23 (금) 안세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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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물건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성격의 영향이 큰 듯한데, 뭔가를 추억하는 시간보다 지금, 그리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집에도 큰 가구말고는 그다지 짐이라고 할 것도 없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지 않으니 집에 따뜻한 느낌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우리집을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COOL’하다고 자주 말한다.

그렇게 생활하다 오랜만에 한국 친정을 방문했다. 친정 부모님댁은 30년이 넘도록 이사 한번 하지 않은 탓인지 굉장히 오래되고 낡은 물건도 많고, 나와 오빠의 물건도 아직 그대로 있는 것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그 넓은 집도 좁게만 느껴지고, 분명 리모델을 해서 깨끗한 집인데도 복잡하게 느껴졌다. “엄마, 오빠랑 내 물건은 좀 버리고 정리하지 그랬어요?”라고 내가 물으니 엄마는 “하나하나가 너희들과의 추억인데 어떻게 내 맘대로 버리니. 정리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여기까지 왔네. 그리고 너의 추억이 담긴 물건은 세라 너가 결혼할 때 다 주려고 했는데, 저 멀리 미국으로 시집을 가버려서 딱히 주지도 못했다”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물건들이 무엇인지 보니, 나의 초등학교 시절 상장부터 시작해서, 만점을 받은 받아쓰기 시험에 글쓰기 대회 나가서 받은 글을 프린트아웃해서 액자로 만든 것, 대학원 입학장 졸업장, 첫 회사 명함에 프로모션 확정 이메일 복사본까지. 현재 나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본인인 나조차 그리워하지 않는 것들을 친정 부모님은 너무나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계셨던 것이다.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가 없다니. 자식을 아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아들 딸 두 자녀가 해외에 있어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해서 집안 정리 하나 못하시고 그렇게 지내셨던 세월들이 생각나 너무 속상해 눈물이 났다. 오빠와 나의 짐들을 온통 다 정리하자 하며 부모님과 마음을 먹고 하나하나 정리하면서도, 아빠는 혼잣말로 “그래. 이렇게 정리를 하게 되는구나. 미련 갖지 말자”라고 하셨다. 그 말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였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자신들의 노년을 정리하는 느낌이 드셨나 보다. 나는 물건을 정리하면 부모님의 삶이 ‘정돈’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께서는 정말로 자식들이 곁을 떠나버리는 느낌이 드셨을 거다. 이렇게 다시한번 부모님의 ‘내리사랑’, 감히 내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큰 사랑을 느끼며 친정에서의 시간이 또 흘러간다.

<안세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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