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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경기 침체다

2022-12-21 (수)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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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의 화두가 ‘금리 인상’에서 ‘경기 침체’로 전환되고 있다. 올해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연속해서 단행한 기준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 완화 효과가 있지만 시장에 푼 돈을 회수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용을 포함한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 등 모든 경제활동을 축소시킨다. ‘양날의 칼’이라는 특성상 지나치면 경기에 큰 악영향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판단 주체가 민간기관이라는 점이다. 올해 금리 인상으로 경제에 관심이 없었던 일반 시민들도 그 이름을 알게된 연준은 미국 대통령이 의장을 지명하는 등 정부 통제 아래에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경기 침체를 판정하는 단체인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다르다. 저명 경제학자들로 구성돼 있지만 회의 일정과 내용도 비공개라 사조직과 다를바 없다.

경제가 호황일 때 NBER의 존재감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러다 지금과 같이 경제에 위기가 닥치면서 ‘경기 침체’라는 단어가 부각되면 스포트라이트가 이 단체를 향해 집중된다. 통상적으로 두 개 분기 연속 역성장을 하면 기술적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최종 판단은 NBER만이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NBER이 실시간으로 경기 침체의 시작과 끝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경기의 고점과 저점에 대해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지난 뒤에 발표가 나왔다. 실시간으로 발표되는 통계가 나중에 수정되는 사례가 많고 가용한 모든 통계 수치를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NBER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단체를 사후 시신을 검사하는 ‘검시관’에 비유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팬데믹으로 나타난 지난 경기 침체를 돌아보자. NBER은 2020년 2월을 경기 침체가 발생한 시기로 보는 공식 선언을 4개월이 지난 6월에 발표했다. 당시에는 이미 정부가 대규모로 돈을 풀면서 단기 쇼크 성격이 강했던 팬데믹 문제를 일부 해소했다는 점에서 뒤늦은 경고였다. 심지어 이때 발생한 경기 침체가 발생 2개월 만인 4월에 종료됐다는 선언은 1년이 훨씬 지난 2021년 7월에 발표했다. 이 정도면 사후 시신을 검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죽은 뒤 매년 지내는 제사 수준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경기 침체의 시간차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주가가 떨어지고 종료되면 주가가 회복된다는 말은 대체적으로 사실이다. 하지만 NBER은 실시간으로 경기 침체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상 경기 침체가 공식 선언된 상황에서는 발생 시점이 한참 전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주가는 이미 상당 부분 올라와 있고 위기라고 하기에는 증시가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가시화된 경기 침체’라는 말은 사실 틀린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 침체 선언’이 가시화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을 경기 침체라고 봐야 한다. 이는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다. 현재를 최악의 상황으로 규정하면 앞으로는 조금씩 좋아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NBER이 이번에는 최종적으로 경기 침체를 선언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정부와 연준이 희망하는 것처럼 가까스로 경기 침체를 피해가는 시나리오인데 고용 상황이 비교적 전의 경기 침체 상황보다 안정적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분석이다. 고위 관료들의 말의 잔치와 별개로 경제를 피부로 느끼는 일반 시민들에게 지금은 고통의 시간이다. 모두를 위해 이번에는 NBER이 더 이상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 없이 조용히 사라지길 빌어 본다.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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