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이던 7년 전만 해도 한국어를 몰랐고 한국인을 만나 본 적도 없어요.” 지난 2016년 5월 16일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를 영어로 번역해 맨부커상(the 2016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For Fiction)을 공동수상한 데보라 스미스 (Deborah Smith 당시 28세) 양의 말이다. 영국 국영방송 BBC는 이렇게 보도했다.
21세까지 영어밖에 모르던 스미스는 영문학 학위를 런던대학에서 받으면서 영한 번역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스미스의 말을 인용했다.
“난 한국문화와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번역가가 되길 원했다. 왜냐하면 번역은 읽기와 글쓰기를 겸해 동반하기에 나는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한국어가 이상하게도 내게는 명백한 선택어 같아 보였다. 실제로 영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아는 사람이 없는 까닭에서였다. .”
소설 채식주의자는 스토리 중심의 구성이 아니어서 번역이 쉽지 않은 작품이라 절제된 문체에 함축된 의미를 영어로 표현하기가 극히 어려웠을 텐데, 어려서부터 이중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중원어민도 아니고 같은 동양권도 아닌 서양 여성으로 21세 때 처음으로 한국어를 한국도 아닌 영국에서 교재를 통해 배우기 시작해 평생토록 매달렸어도 불가능했을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내가 추리 판단해 보건대,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을 하지 않고 ‘반역’ 을 해서인 것 같다.
흔히 번역도 창작이라고 하지만 그냥 창작이 아니고 ‘반역(反逆)’의 창작을 했기 때문이리라. 일찍이 독일의 시인 칼 빌헬름 프리드리히 슐레겔(1772-1829)은 “좋거나 훌륭한 번역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최상의 것이다. ”라고 했다는데 ‘반역의 창작’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이 ‘반역의 창작’은 문학작품 번역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인생 전반 각 분야 삶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지만, 각자는 각자대로 늘 새롭게 느끼고 생각하며 체험하는 걸 창의적이고 독자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리라.
데보라 스미스의 경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우선 그녀가 남들이 안 하는 한국어를 선택했다는 거다. 남의 뒷다리나 긁지 않고, 다들 서쪽으로 우르르 떼지어 몰려갈 때 자신은 그 반대로 남이 안 가는 동쪽으로 향했다는 말이다.
이것이 개척정신이요 모험심이며 탐험가의 기질이 아니겠는가. 다음으로 내 경험상 짐작하건대 그녀는 ‘채식주의자’ 한 문장 한 문장, 한 구절 한 구절, 한 단어 한 단어, 한 음절 한 음절을 결코 직역하지 않고 한국어가 아닌 영어식으로, 그것도 다른 서양인이나 영국인이 아닌 자기만의 스타일로 의역했음이 틀림없다.
영국 국영방송 BBC가 한강과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세계 3대 문학상인 영국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후 2016년 5월 17일 ‘채식주의자: 한국어를 배우고 상을 타는 방법’이란 제목의 뉴스에서 스미스가 2010년부터 한국어를 배운 사실을 언급하면서 한국어가 어떤 언어인지를 살펴봤다.
BBC는 세종대왕이 빌려 쓴 한자 대신 28개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한글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백성들이 쉽게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됐다며 “슬기로운 자는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우칠 것이고, 어리석은 자라도 10일 안에 배울 수 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문구를 전했다. 그러면서 본질적으로 익히기 쉬운 언어는 없다는 언어학자들의 통상적인 견해를 소개했다.
번역은 언어를 배우는 것과 다르다. 창의적인 과정이며, 스미스가 장편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상을 공동 수상한 이유인 것이다. 한글 및 영문 버전으로 이 책을 읽은 한국인 독자는 “번역본도 원작만큼 좋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번역가 스미스는 책의 리듬을 찾으려고 했다면서 “당신이 위대한 한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면, 그 번역은 영문학으로도 훌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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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