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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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터키

2022-12-08 (목) 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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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처음 맛 본 음식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터키라고 말한다. 아담하고 통통한 치킨과 달리 생긴 모습부터 흉하다 생각했던 터키는 입에 넣는 순간부터 도저히 적응이 안되는 강한 첫인상을 남겨 주었다. 워낙 비위가 약해 둥그렇게 쌓여 있는 순대 옆을 똑바로 지나가지 못하고, 맹장 수술 후 엄마가 몸에 좋다며 소고기를 구워 주셨지만 염소고기란 걸 단 몇 초 안에 알아내고는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던 나였다. 아직도 양고기를 먹지 못하는 나는 성지순례 때 주차장까지 풍겨오는 냄새에 이미 멀미가 나서 식당도 들어가지 못하고 버스에 혼자 남아 호텔에서 싸온 달걀을 먹었고 배 속을 국제화 시키지 못할 바엔 여행을 오지 말라는 남편의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그런 내가 38년 동안 이어온 터키와의 악연 속에 올해 드디어 대박이 났다. 감사절기마다 늘 그래왔듯이 교회와 식구들 모임에서 두 번이나 터키의 자태를 보았는데도 덩치 큰 녀석들이 의젓해 보이고 하나도 밉지 않아 오히려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그렇지만 그 맛이 또 나를 힘들게 할까 싶어 작은 터키 한 점에 크랜베리를 듬뿍 얹어 조심스레 입에 넣었는데 와! 눈이 크게 떠지는 이 맛은 무엇인가. 그동안 내가 그토록 거부해왔던 그 향은 다 어디로 가고 우아한 버터 맛이 내 혀를 감싼다. 몇 번을 먹어봐도 터키의 깨끗함과 담백함에 캐서롤을 곁들여 함께 먹으니 정말로 맛있기만 하다. 내가 이제야 비로소 미국에 입성한 것일까. 올해의 터키는 일명 ‘먹보’인 나의 입맛목록에 당당히 등록되었고 나를 진정한 미국 시민으로 만들어주었다.

풍성한 식탁과 식구들의 만남으로 설레고 분주했던 감사주간이 훌쩍 지났다. 정작 마음으로는 한해 동안의 감사를 찬찬히 세어 주님께 드리고자 결심을 했건만 앞치마 끈을 풀어 놓으니 땡스기빙은 어느새 저만치 떠나버리고 빈자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흔히 감사에는 감사해야 할 이유와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당연히 감사를 하게 되는데, 나에게는 이러한 넘치는 감사와 함께 마음 저 구석에 감사하고 싶지 않아 나를 변덕스럽게 하며 한결같은 감사를 변질시키는 검정마음이 숨어 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릴 수 있는 감사는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멋진 감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 쉽지 않은 고백을 위해 오래전부터 주님의 처방전 “무조건 감사” 약을 꾸준히 복용해오고 있다. 이 마음의 만병통치약은 절제되지 않는 내 입술의 원망과 마음에 쟁여 둔 케케묵은 몹쓸 생각들을 치유해주어 나를 찌르는 아픈 가시에도 감사할 수 있게 해준다. 날마다 다져진 변함없는 감사로 내 마음이 채워지는 그날을 바라보며, 올해에도 늦었지만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에 그럼에도 불구한 감사를 수북이 더한 내 마음을 예쁜 리본으로 묶어 주님께 보내 드린다.

<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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