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4년간 연세대 의대 교재로 사용 보존된 아버지 시신 이제야 땅에 묻습니다

2022-12-08 (목)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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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타이머 한병일씨 ‘사부곡’

▶ 아버지 한기모 목사 ‘고귀한 삶’ 귀감

44년간 연세대 의대 교재로 사용 보존된 아버지 시신 이제야 땅에 묻습니다

연세대 의대 의학교재 표본으로 제작된 아버지 한기모 목사 시신 앞에 서있는 한병일씨(오른쪽)와 한병일씨 아내 소피아 한씨.

44년간 연세대 의대 교재로 사용 보존된 아버지 시신 이제야 땅에 묻습니다

고 한기모 목사


알라메다에 거주하는 올드타이머 한병일(84)씨는 44년간 연세대 의대 교재로 사용, 보존됐던 아버지 한기모 목사(1893~1978년)의 시신을 이제야 땅에 묻고 나서야 자식된 도리와 책임을 다한 것 같아 모든 것이 감사한 마음이다.

한기모 목사는 평소에 친구인 세브란스병원 원장 김명선 박사에게 “내가 죽거든 시신을 땅에 묻지 말고 의학교재로 사용하도록 세브란스 의과대학에 바친다”고 말한 후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신기증서 서명에 날인했다. 지금이야 장기기증이나 시신기증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쉽지 않은 용기이자 결단이었다.

이후 1978년 9월 86세 일기로 소천한 한 목사의 시신은 약속대로 병원에 기증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 실습실에 표본으로 제작돼 44년간 의대생들의 교육과 연구 교재로 사용, 보존되다가 2022년 9월30일 가족 품으로 인도돼 광림교회 믿음의 동산 산장에 안식되었다.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2022년 11월 별세)는 광림기도원에 한기모 목사의 삶을 기리는 기념관을 만들기도 했다.


한씨는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아무도 가지 않은 강원도 목회를 자원해 가셨고, 7곳 교회를 자전거 타고 코넷을 불면서 순회목회를 하셨다. 일제 치하에서는 만주의 장춘, 길림, 하얼빈 등지에서, 6.25전쟁때는 피난지인 제주도에서 목회를 하시는 등 모두 43곳 교회에서 시무하셨다”면서 “은퇴후에도 병원, 경찰서, 유치장, 갱생원 등지를 순회하며 전도하셨고, 그중에 중환자결핵 요양소 지역에 실로암 교회도 세우셨다”고 말했다.

그는 “너희 아버지는 세상 기준으로 보면 화려한 목회자 생활이 아니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진정 충직한 목회자’이었다고 김명선 박사님이 아버님 장례식에서 해주시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복음 전도에 생을 바치셨고, 주의 종으로서 죽어서도 말씀에 순종하셨다”고 회고했다.

평안북도 영변 출생인 한기모 목사는 감리교 선교사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밀러 선교사 밑에서 숭실학교서 동문수학한 김명선 박사는 의사로, 자신과 고향친구인 류형기(감리교 감독)는 목회자로 길을 세운 후 평생 서로를 격려하며 믿음의 길을 함께했다.

한씨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연대 의대를 찾아 표본으로 제작된 아버지 시신을 보면 아버지의 고결한 뜻을 충분히 헤아리면서도 자식으로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면서 “내 나이도 적지 않은 터라 빨리 아버지를 모시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소원하던, 아버님의 시신을 가족 품으로 돌려받아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베이지역으로 돌아온 한씨는 갑작스레 스트로크(stroke)가 와서 현재 재활중이다. 한씨는 2015년, 2016년 PGA 투어에서 우승한 한인 골퍼 제임스 한(한국명 한재웅)의 아버지이다.

한기모 목사의 유족으로는 한병일씨와 고 한병숙(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 권사)씨,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는 한병칠 은퇴목사, 한국에 거주하는 한병삼씨가 있다.

한기모 목사의 생애와 고귀한 삶은 한국감리교 인물사전 DB(https://kmc.or.kr/dic-search/dictionary)에 실려있다.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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