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신부가 되어서 미국성당에 4년반을 보좌로 있다가 한국성당으로 발령받아 왔다. 그리고 내 아버지 신부이신 박창득 몬시뇰님의 뜻에 따라 혼인한 부부들과 사제들이 함께 하는 메리지 엔카운터 (Marriage Encounter) 운동에 참여해 지금까지 메리지 엔카운터 발표 사제로 살아오고 있다.
천주교 사제들이 다 비슷비슷하다고 하겠지만 그렇지만 엠이 (메리지 엔카운터를 줄인말) 신부는 뭔가 조금은 다르다. 엠이신부가 뭐가 다른지 처음에는 나자신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엠이운동을 배워가고 느끼면서 부부들과 10/10 (10분 쓰고 10분 대화를 나눈다) 트라이로그 (Trilogue) 을 하면서 어느새 내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엇보다도 관계의 중요성, 배우자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듣기의 중요성, 자신과의 만남, 대화속에서 배우자와 나 자신의 느낌을 찾아내기, 그리고 나는 왜 요 모양 요꼴로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주는 자신의 성격특성 등이다.
처음엔 독신으로 살아가는 내가 왜 부부들과 한 팀이 되어서 엠이운동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됐다. 엠이 주말에 부부들이 다정하게 손잡고 스킨십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여기서 뭐하냐 괜히 열받고 심통이 났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그랬는데 독하게 이를 악물고 살아가려고 했는데 뭔 관계이니 느낌 대화이니 부부사이를 깊이 일치시키는 친밀이니는 다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개소리였다.
신부가 되기 위해 8년의 신학교 생활은 한마디로 나에게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영어도 버벅거리는 내가 미국성당에서 시작한 신부생활은 한마디로 처절한 생존의 하루하루였다. 나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대해준 사람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나의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철저히 나를 위해 나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저 본능적인 외로움 그리움으로 누군가를 만나기를 열망했지만 사실 내 마음을 어떻게 여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먼저 사제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제양성교령의 말씀이 얼마나 진실인지 시간이 갈수록 깨닫게 된다.
나의 어린시절 내가 본 우리 부모님은 자주 와장창 싸우시는, 행복한 결혼생활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그걸 보면서 아 나는 결혼하면 큰일난다. 결혼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컸다. 아! 사제생활이야말로 내가 갈길이다 라고 마음을 정하고 그 길을 걸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엠이를 통해 어려움과 역경을 뚫고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깊은,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부부들을 보는 것은 나에게 참 놀라운 충격이었다. 영화에서나 봤지 소설에서나 봤지 그런데 내 앞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부부들을 보면서 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깊이 나자신을 열어 보여주고 상대방을 받아주고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어려움과 고통을 뚫고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의 사명이 사랑이 아닌가? 사제가 이런 사랑이 없다면 이런 사랑을 모른다면 이런 사랑을 지켜가지 않는다면 뭐란 말인가?
가끔 사람들이 왜 관계를 맺어야 하냐고 볼멘 소리로 따진다. 부부생활이 죽음처럼 힘들다고도 한다. 이혼이 인생의 종착역도 아니다. 나도 첫 번째 서울 신학교 실패를 넘어 두번째 뉴저지 씨톤신학교에서 꿈을 이루었지만 아직 생명의 드라마는 계속되고 있다. 하느님이 어디로 이끄시는지 하느님만이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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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현/팰팍 성 미카엘 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