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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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생각 - 저물어 가는 가을

2022-11-25 (금) 김영란/수필가 ·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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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가을 들녘에 서서 지금 이곳에 이 시간까지 조물주의 은혜 아래서 여전히 살아 숨쉬며 이 아름다운 만추의 가을을 바라보며 느끼며 소망을 갖게 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비록 넓은 들판에 나무들은 모두 색깔이 퇴색하여 그 푸르던 잔디밭과 어울려 푸른 물결을 치던 모든 것들이 이렇게 누렇게 변하여 가지만, 또다시 다가올 다음해를 기약하면서 낙엽이 되어 떨어져 겨우내 밑거름이 되기 위하여 자신들이 죽어 썩지 않으면 안된다는 진리를 우리 인간들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우뚝우뚝 서있던 나무들은 어찌 그리도 믿음직한지 여름내 그 푸르청청하던 잎들은 조물주의 손길 따라 순응하며 오색찬란한 옷을 갈아입고 온-천지를 휘황찬란하게 색색의 단풍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리도 아름답던 단풍이 어느새 한 잎 두 잎 미련 없이 떨어져 내려 낙엽이 되어 모두들에게 밟히며 자신을 썩히고 썩혀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 밑거름이 되어 또 다시 찾아올 명년을 위하여 옥토로 만드는 작업을 땅 속 깊은 곳에서도 겨우내 쉬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가을 들녘 끝자락에 서서 지금까지 내 자신이 무엇을 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반성해 보며 되돌아보면서 수많은 나무들을 바라본다.

그리도 과묵하던 나무에서 몸 가지마다 틈새에서 여리디여린 새싹을 새 봄에 틔어 내느라 얼마나 그 인고의 세월이 아릿했을까? 그 값진 아픔 때문에 한여름엔 수많은 나무의 잎들이 푸르청청하여 우리 인간들에게 희망찬 삶을 보여주는가 하면, 또다시 가을이 되면 오색찬란한 단풍의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었다가 늦가을 끝자락이 되면 미련도 욕심도 없이 한 잎도 남기지 않고 순순히 땅으로 떨어져 낙엽이 되어 밑거름이 되는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또 과일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 잎과 꽃을 피워 봄내, 여름내내 아름다움과 향기로 우리들을 기쁘게 해주다가 다시 이렇게 가을이 되어 꽃잎이 떨어지는 아픔을 딛고 탐스러운 열매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풍부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런 나무들 모습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무들은 비록 들리지 않는 언어로도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데 우리는 들리는 언어의 축복을 받아 매일 매일을 밖으로 말을 쏟아내면서 얼마만큼이나 이른 봄처럼 아름다운 소망을 나누었으며 여름날처럼 푸르름으로 희망을 주었으며 가을날처럼 오색찬란한 사랑의 열매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가슴 설레게 해보았는가!

‘공중의 새들도 물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시편 104편 12,13절)

<김영란/수필가 ·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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