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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4 (목) 하은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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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면 여전히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연기대상 시상식을 기다린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OTT 플랫폼에서 시리즈로 방영하는 드라마들이 많지만 그래도 토·일요일을 기다리게 하는 주말극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해 주말을 가장 기다리게 했던 드라마는 ‘현재는 아름다워’(극본 하명희·연출 김성근)였다.

지난 봄 드라마 제목이 좋아서 보기 시작했고 여름을 보냈다. 일부 40대 남성들이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는 ‘현재를 즐겨라’(Carpe Diem)는 문구는 숱하게 들었지만 ‘현재는 아름다워’를 내세운 것이 마음에 와닿았다. ‘카르페디엠’은 1990년 개봉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한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고교시절을 보낸, 이제는 중년이 된 남성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피할 수 없다면 ‘오늘을 즐겨라’는 의미다. 자신의 모교인 웰튼 아카데미에 부임한 교사 존 키딩이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학생들에게 외친 말이다. 그런데 즐긴다고 해서 늘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 ‘현재’ 아닌가.

드라마 ‘현재는 아름다워’는 50부작으로 종영하면서 함축된 의미를 모두 풀어냈다. 제일 먼저 드라마 속 변호사 아들 ‘현재’다. 아름다운 마음씨가 드라마의 막장 요소까지 미화하는 힘을 발휘했는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만들어낸 ‘단단함’이 아름다움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어머니 입장에선 한없이 부담스러운 둘째 아들 ‘현재’(윤시윤 분)의 대사 “내가 선택했고 내가 결정한 것이니까 당신은 내 결정 따라주기만 하면 돼”라는 말이 왜 현재는 아름다운지 알게 해준다. 또, 잃어버린 딸 대신 이민호(박상원 분)를 양자로 들여 따스하게 보살핀 아버지 이경철(박인환)의 대사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다”는 말이 작가가 선택한 이 제목의 진정한 의미를 짐작케 한다. 무엇보다 윤재·현재·수재 세 아들을 낳아 오늘의 일가를 이룬 아버지(박상원 분)가 일기장에 쓴 문구 “현재와 정은이의 기록을 쓸 수가 없다. 현재는 곧 과거가 된다”가 후회 없는 선택이 낳은 아름다운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드라마 ‘현재는 아름다워’는 이가네 어른들이 나이가 꽉 찬 삼형제가 도대체 결혼할 생각을 않는 모습에 애지중지하던 아파트 한 채를 내건 결혼 프로젝트를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큰 아들인 치과의사 윤재(오민석 분), 둘째 아들 변호사 현재, 막내 아들 공무원시험(이른바 공시)준비생 수재(서범준 분)가 바로 어른들이 걱정하는 멀끔하게 생겨먹은 아들들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삼형제가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 윤재는 주식 투자로 빚만 남은 마이너스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며 아파트로 빚을 갚아볼까 생각한다. 막내 수재는 엄마가 원하는 공무원이 되기 보다는 헬스장 운영 같은 사업을 하고 싶었던 차에 처지가 비슷한 유나를 만나 ‘가족이니까 뭐든 날 이해해 주고 도와줘야 해’란 마인드로 계략을 꾸민다. 그리고 외모도 생각도 아름다운 ‘현재’는 변호사가 된 이후 고수해온 자신의 원칙을 위협할 만큼 마음에 드는 ‘현미래’(배다빈 분)를 만나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장가를 안간 건지 못가는 건지 헷갈리게 하는 머리 큰 아들이 있는 부모라면 무릎을 치게 만드는 드라마다. 애지중지 키운 우리 딸이 왜 저런 남자에게 속아서라고 가슴앓이를 하는 부모에게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결혼관을 알게 해줄지 모른다. 근데 회를 거듭할수록 ‘이현재’ 같은 아들 둔 부모는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부모니까 그냥 져주어야 하는 상황을 논리정연하게 만드는 가운데 낀 아들이다. 그리고 이가네 종손인 ‘이윤재’는 의대에 갈 정도로 공부 잘하고 순둥순둥해 부모에게 걱정 한번 끼친 적 없는 아들인데 도통 결혼할 생각을 안해서 걱정이다. 막내 ‘수재’는 의사·변호사 형들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진 공시 삼수생이지만 아들 밖에 없는 엄마에게 딸 같은 아들이다.

드라마 ‘현재는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할머니, 어머니, 딸 중에서 가장 속시원한 가족 문제 해결사가 바로 삼형제의 어머니이자 민호의 아내 한경애(김혜옥 분)이다. 한 발짝 물러서 있다가도 나서야할 때를 확실히 아는 ‘직진’형 엄마는 어쩜 저렇게 매사 솔직할 수 있는지 싶다. 시아버지와 남편, 세 아들 이렇게 다섯 남자 틈에서 살다보면 오지라퍼가 되는 걸까 싶기도 하다. 또 하나, 요즘 세상에 드문 3대가 한 집에서 사는 현재네와 미래네 두 가정의 대가족 라이프는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물론 선택권이 있다면 100억대 건물을 쥐고 있다가 나한테 잘하는 자식(며느리 포함)에게 물려주겠다는 호탕한 시어머니 윤정자(반효정 분)로 살고 싶지만 말이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수감사절이다. 부모한테 잘하는 자식, 보기만해도 화가 치미는 자식,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자식 모두가 반가운 날이길 바란다.

<하은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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