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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만 펜실베니아 상원 당선자가 남긴 교훈

2022-11-17 (목)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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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8일 제118대 미국 의회 중간선거가 치러졌다. 투표 전 예상으로는 조 바이든 행정부를 괴롭혔던 인플레이션 문제로 공화당이 압승하는 선거가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양당 간 접전의 양상이어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일단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원의 경우 민주당이 다수당을 유지할 가능성이 열려 있기는 하지만 근소한 격차로 공화당이 다수당을 탈환할 것으로 보인다. 하원보다는 지금의 제117대 의회에서 양당 동수인 상원의 선거 결과가 더 관심을 끌었다.

차기 상원에서도 적어도 양당 동수 상황은 유지해야 민주당은 공화당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2024년 대통령 선거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후의 격전지였던 네바다주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 현역 의원의 승리가 확정되면서 민주당이 50석을 확보해 민주당 대 공화당 의석 비율이 50 대 49가 되었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의 동수 타개 투표권을 고려하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 셈이다. 12월6일 조지아주 결선투표에서마저 승리해 51석을 차지하게 되면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말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 상원의원이 현역인 네바다주와 조지아주 가운데 어느 한 주에서만 승리해도 민주당이 살아나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준 주인공은 바로 존 페터만 펜실베이니아주 상원 당선인이다. 민주당 후보인 페터만은 현역 공화당 의원의 은퇴로 무현직 선거구가 된 펜실베이니아주를 빼앗아왔는데, 이번 전체 35개 상원 선거에서 다른 정당의 의석을 탈취한 사례는 그가 유일하다. 만약 페터만이 져서 민주당 대 공화당의 의석 비율이 지금 49 대 50이라면, 민주당은 반드시 조지아주 결선투표를 이겨야 50 대 50을 유지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됐을 것이다. 페터만의 펜실베이니아 승리는 그만큼 짜릿하고 강렬한 것이었다.


늘 검은색 계통 후드형 윗도리를 걸치고 턱수염을 기른 페터먼은 기골이 장대하고 얼핏 우락부락한 인상을 하고 있다. 그는 코네티컷대학 시절 절친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극빈 가정 아동에 대한 멘토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경험을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는 운명으로서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정규 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 청년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봉사단의 일원으로 자원봉사에 임했다. 이를 통해 그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감정이입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펜실베이니아주로 돌아온 페터만은 2005년 브래덕이라는 아주 낙후된 소도시의 시장으로 당선된 후 지역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철강 공장 노동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꾸준히 소통했다. 상원 출마 전에는 부주지사로 일하면서 감형과 사면을 통한 수형자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민주당 경선 도중에는 심장질환으로 뇌출혈을 겪으면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가 본선거전에 복귀하기도 했다. 그 후 공화당 오즈 후보의 집요한 요청을 받아들여 어눌한 말투로 후보 토론에 임하기도 했다. 토론을 본 유권자들은 사지에서 돌아와 회생한 페터만을 낙후된 ‘러스트 벨트’에 사는 자신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페터만은 말수가 적고 고집도 세며 민주당 지도부와 갈등도 많았던 후보였다. 그리고 그의 당선은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한 메흐메트 오즈 후보의 흠결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이 속한 상원 선거 트랙에서 1962년 이래 처음으로 민주당 의원으로 다시 당선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어려운 선거에서 블루칼라 유권자들이 그를 지지한 것은 자신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그에게서, 역경을 뚫고 도전을 회피하지 않는 그에게서 강한 일체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와 같이 분열의 프레임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사이비 정치인이 다시 출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소외된 자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정치인이 대항마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페터만의 당선이 잘 보여주고 있다.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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