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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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숨표

2022-11-14 (월) 데보라 임 / 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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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시절부터 이어져온 피아노교습은 내 삶의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집에서 학생을 가르치니 그 소리를 듣고 자란 두 살 난 딸아이가 막대기를 들고 “하낫, 뚤, 하낫, 뚤” 하며 놀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그런데 미국살이 25년, 50세가 되던 해에 나는 커다란 음모를 시작했다. 기억력이 더 쇠퇴하기 전에 미국의 라이선스를 하나라도 가져보고 싶은 도전이 생겨 지금의 재정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음악의 손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엄청난 반전 후, 10년이 넘어 거라지를 정리하던 중 냉장고 옆에 끼어있는 피아노 교습 광고판을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내려놓았던 오랜 세월은 다 어디 가고 심장이 뛰면서 휘리릭 피아노로 다시금 빠져 들어가는 나를 느꼈다. 광고판을 꺼내어 먼지를 잘 닦아 현관 앞에 쑤욱 꽂아 놓았는데 웬일인지 그 광고는 바로 다음날부터 학생을 나에게 데려다주었고 음악을 잊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춤추게 했다.

레슨을 하다 보면 학생을 위해 곡을 선보여줄 때가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기초 수준의 곡을 연주해도 이상하게 내 안에 음악이 예전과 다름을 느낀다. 학창시절 교수님께서 연주하시면 어려운 부분도 아닌데 내 연주와는 뭔가 달랐던 딱 그 느낌이다. 뭐지? 곰곰이 생각하며 내린 결론은 바로 숨표의 연결고리였다. 깊은 호흡으로 이어가는 음의 흐름은 같은 박자이지만 신기하게도 고상함, 우아함, 여유로움이 덧입혀진다.

쉼표와 숨표는 차이가 있다. 쉼표는 작곡자의 악상에 따라 악보에 이미 표시가 되어져 그 부분의 소리를 끊어내야 하지만, 숨표는 전적으로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다. 그런데 숨표의 들숨은 왜 그런지 인생 연륜이 함께 묻어난다. 바쁘게 허덕이며 살아지는 인생을 연주해오면서 일상, 내면의 우아함과 여유로움을 주는 숨표의 기묘함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째깍째깍 시계 박자에 맞추어 바빠! 만을 외치며 열심히 살았던 젊음의 시간을 뒤로 보내며 이제 나는 충분한 숨을 들이마셔 푹신하고 정화된 영혼으로 남은 삶을 맞으려고 한다.나의 모두가 서려있는 호흡으로 음악에 한껏 숨표를 넣어주어 귀한 내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내가 교수님의 소리를 기억하듯 나의 소리를 저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겨져있게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데보라 임 / 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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