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쓰러진 고목의 교훈

2022-11-06 (일)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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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계절답게 정말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찔 만큼 날씨가 좋다. 산책을 하기 딱 좋은 날씨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숲이 있다. 잘 가꾸어진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푸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어 이 길을 좋아한다. 사계절 걷는 길인데 걸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요즘은 가을이라고 말을 해 주는 것처럼 떨어진 낙엽이 흐트러져 있고 가끔은 그 속에서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를 만나기도 한다. 파란 잎과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로 싱그러운 여름을 보여주더니 지금은 앙상한 가지가 대부분이다. 문득 걷다가 인적이 드문 곳을 보니 쓰러진 나무가 겹겹이 누워 있고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 그곳에 서 있었을 나무.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생을 다하고 마른 고목이 되어 쓰러진 나무. 물을 머금고 햇살을 받으며 곧게 뻗어 자라는 나무도 좋지만 왠지 오늘은 쓰러진 나무에 자꾸 눈길이 간다. 내 마음이 그래서일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더불어 살아가며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 관계 속에 살면서 서로를 축복하고 귀하게 여기면 좋을텐데 편한 사이, 너무 잘 아는 사이에서는 오히려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많다. 함께 밥 먹어주는 남편이 있어서 좋고,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 주는 아내가 있어 고맙고, 부모의 안부를 챙겨주는 자녀가 있어 든든하고, 사랑스레 품에 안기는 손주들이 있어 행복하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만나 반갑게 안부를 물어주는 교회 식구들이 소중하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나를 소중하게 여겨 주기 바란다. 때로는 이러한 사람의 양면성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나무는 자랄 곳을 정해 놓고 싹을 틔운 것도 아니요, 잘 자라고 있으니 누군가 내게 시선을 달라고 청한 것도 아니요, 수명을 다했으니 스러져간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 것도 아니다. 그저 있어야 할 곳에서 자신의 몫을 묵묵히 감당하다가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나무에 비한다면 나는 움직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도 있다. 감사한 것이 더 많은데도 때로는 무관심에 속상해 하고 섭섭해 했다. 나무는 그런 마음을 접어두고, 인정받기보다 먼저 인정해 주는 사람이 되고, 소중히 여겨 지기를 바라기보다 당신이 소중하다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준다.

자연을 통해서도 배우는 것이 참 많다. 오늘은 쓰러진 나무가 나의 심란함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큰 스승이 되었다. 이름 없이 살다 간 나무 한 그루지만 소중했고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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