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선택과 선택지의 폭

2022-11-02 (수) 김선원(한국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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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넓다고 해서 삶의 중요한 선택을 잘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와 이민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놀랐던 것은 선택지가 많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대국이었다. 대국에는 우유도 1%, 2%, whole milk, half & half, heavy cream 등 지방 함유량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버클리에는 ‘버클리보울’이라는 볼링장을 개조한 식료품점이 있다. 그곳에 가면, 버섯 종류도 대여섯가지, 사과도 풍미와 종자별로 10가지가 넘어 매번 장 볼 때마다 고르는 즐거움과 새로운 재료를 맛보는 풍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나의 손에 쥐어진 선택지가 많다고 해서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도움을 주는 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싱글 친구들의 연애 풍속도를 보아도 그렇다. 초기 온라인 데이팅은 선택지 중 하나였고 대세는 아니었다. 그러나 코비드로 인해 미혼남녀 만남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도입되고 있는 온라인 데이팅앱은 게임화 된 부분들이 많아 감각적이고 빠르다. 빠른 시간에 많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고, 한꺼번에 손쉽게 말을 걸고, 좋은 사람과 접속을 시작할 수 있다. 인륜지대사라 불리우던 ‘결혼’은 이들에겐 너무 무거운 주제이다. 접속을 해서 몇번 가볍게 오가는 대화, 만남으로 이어지기까지, 그 많아 보였던 선택지는 차츰 줄어든다. 온라인상에서 호감가는 몇몇과 첫만남을 가져보지만 이들이 두번째 세번째 만남을 갖는 확률은 전보다 많이 줄어든다고 한다. 첫만남 이후 스캐닝한 그 상대에게 마음에 안드는 점이 보이면 바로 그 선택을 버리는데, 다시 온라인 데이팅앱에서 또 쉽게 상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촘촘히 짜놓은 알고리즘은 그 데이팅앱에서 얼마나 많이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한데, 실제 좋은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사실 많아 보이는 선택지는 앱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려는 온라인 데이팅 회사의 이익창출을 위해 짜여져 있다. 애초부터 많은 선택지, 수많은 남녀 사진에 불과할 뿐 실제 당신이 원하는 만남, 그 만남을 의미있게 만들고자 함이 목적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선택지를 넓혀주는 마케팅의 발달, 사업의 발달이 한 개인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잘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결정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과 항상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미디엄, 웰던, 레어로 고를 수 있게 한다고 한들, 사이드 초이스가 3개에서 4개가 된다 한들, 잘하는 한국식당의 단독 메뉴가 갖는 파워와 맛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선택의 폭이 넓다고 해서 선택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선원(한국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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