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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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기다리며

2022-10-29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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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동부로 출장을 떠났다. 코로나 이후로 다시 재개된 첫 출장 소식에 남편 앞에서는 울상을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 이십사 시간 내내 붙어 있으려니 조금 갑갑했나 보다. 혼자 애 둘을 보게 되었다며 툴툴거리며 짐가방을 싸는 남편을 도와 속옷과 세면도구 등을 챙겨 주었다.

남편이 공항으로 떠나자마자 진하게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남편 재택근무 중에는 시끄러울까 봐 못 트는 음악을 크게 틀어본다. 아이들은 아빠가 떠난 줄도 모르고 제각기 노느라 바쁘다. 손 많이 가는 아빠가 없으니 애 셋에서 둘로 줄은 것 같아 홀가분하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집안이 너무도 평화롭다. 입 짧은 남편도 떠났으니 일주일간 내가 먹고 싶은 음식 실컷 먹고 즐기리라.

낮에는 엄마, 아빠가 번갈아 가며 오셔서 애들도 봐주시고 살림도 거들어주셨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남편이 잘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직항도 없는 동부 시골 마을에 가느라 고생을 한 모양이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화상 전화가 왔는데 고새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하고 전화를 끊고 나도 애들을 먹이고 씻기고 침대에 누웠다.
아이들이 일찍 잠이 들고 나는 조심스레 거실로 나와 밀린 설거지와 빨래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챙겨 먹는 영양제를 한 움큼 입안에 털어 넣으며 애들 아빠도 좀 챙겨줄걸 하며 뒤늦은 후회를 한다. 남편이 없어서 몸이 편한 것도 잠시 이 집에 나와 아이들만 있다는 생각에 쓸쓸함이 몰려온다. 가뜩이나 아침, 저녁으로 부쩍 쌀쌀해졌는데 남편도 없으니 온 집안이 썰렁하다.


대충 집안일을 마치고 평소보다 이중으로 문단속을 하고 애들 옆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 자리에 눕는다. 딸아이를 위해 붙여둔 천장의 형광색 별 스티커들만이 잠들지 않고 반짝반짝 나를 반긴다. 아침에 먹은 커피가 너무 진했는지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남편은 지금쯤 자고 있겠지? 건넌방에서 새어 나오던 남편의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이들의 쌔근쌔근 숨소리만 나지막이 들려오는 고요한 밤이다. 빨리 잠들지 않으면 내일 육아가 힘들어지므로 억지로 잠을 청해 본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세찬 바람소리인지 벌레잡이 기계에 벌레 잡히는 소리인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문뜩 잠에서 깼다. 남편도 없는데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든다. 누가 침입한 것은 아닌지 귀를 쫑긋 세우고 밖에 태동을 살핀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마음이 놓인다. 그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상상이 다 들어 식은땀이 다 났다. 남편이 없으니 조그마한 소리에도 신경이 쓰이나 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에게 아침 안부를 묻는다. 아이들도 이틀이나 아빠가 안보이니 그제야 아빠의 부재를 실감했는지 아빠를 찾는다.

남편이 없는 김에 남편의 이불도 빨고 남편의 어지러운 서재도 이리저리 청소를 해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남편이 오려면 사흘이나 더 남았는데 자유는 잠시이고 그리운 마음이 든다.

이불 빨래 후 뽀송뽀송한 이불을 그가 자는 방에 펴준다. 출장 다녀오면 피곤할 그를 반겨줄 따스한 이부자리이다. 무딘 남편은 내가 이렇게 자기를 위해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놓은지 모르겠지만 나 혼자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든다. 우리 가정을 위해 저 멀리 어느 시골마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아빠도 클라이언트와 일하며 말 못 할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많겠지만 생색내지 않듯이 나도 내 할 일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낸다.

남편이 오는 금요일에는 애아빠 좋아하는 뜨끈한 된장찌개에 고기반찬을 잔뜩 해서 내어주어야겠다. 호텔과 공항 라운지, 비행기에서 주는 간식과 주전부리들을 출장 선물이랍시고 잔뜩 가져올 남편이지만 그가 돌아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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