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0년마다 전국적인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각 주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총 435개의 연방하원 의석수를 재배정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에 진행된 인구조사에 따라 대도시가 많이 포진한 캘리포니아, 뉴욕, 펜실베이니아주 등은 각각 하원 의석 1석씩 잃게 되었고, 반대로 텍사스는 2석, 콜로라도, 노스캐롤라이나주 등은 1석씩 늘어났다. 이처럼 연방 차원에서 큰 틀이 정해지면 주 정부가 나머지 후속 선거구 조정을 마무리한다.
정치인들에게 선거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선거구를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에선 ‘선거구민들이 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대표가 선거구민들을 뽑는다’는 우스갯말까지 생겼다. 왜냐하면 주민들의 정치 성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바로 현역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당이나 정치적 여건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그리기 때문이다.
한 예로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020년의 대선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주민의 48.6%가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지지했음에도 이번에 새롭게 조정된 선거구는 14개의 연방하원 의석 중 10개가 공화당에 유리하게 획정되었다고 보도했다. 바로 민주당 텃밭인 롤리(Raleigh) 같은 도시를 여러 선거구로 쪼개 보수 성향인 지역들과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정 후보나 정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게리맨더링’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210년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Elbridge Gerry)가 자신의 정당에 유리하도록 분할한 선거구 모양이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샐러맨더를 닮았다고 해서 게리와 샐러맨더를 합쳐 게리맨더라는 합성어가 유래하게 된 것.
선거구 재조정에 관해 연방대법원은 애써 ‘정치적 문제’라며 거리를 두다가 1962년 ‘베이커 대카’(Baker v. Carr) 사건을 통해 개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도시들은 대개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을 통해 농촌 인구가 대거 도시로 유입되는 과정을 겪었는데 테네시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는 테네시주의 경우, 1901년부터 60년 동안 한 번도 선거구 재조정을 하지 않아 주민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음에도 정치인은 오히려 농촌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에 의거, 테네시주의 선거구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1인 1표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베이커 사건 후 미국의회는 유권자의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투표권을 축소하지 못하도록 하는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을 제정했다. 이 법률은 소수민족 유권자들의 표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게끔 소수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선거구(다수- 소수선거구제)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아시아계 밀집지역인 뉴욕 플러싱의 경우 선거구가 2~3개로 나누어진다면 아시아계 정치인의 선출이 어려울 테지만 이 제도 덕분에 현재 중국계 ‘그레이스 맹’ 의원이 하원의원으로 선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투표권법이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최근 7개의 하원의석이 배정된 앨라배마주에서 흑인이 27%나 되는데도 흑인에게 유리한 선거구는 1개(14%)밖에 되지 않아 문제가 된 ‘메릴 대 밀리건’(Merrill v. Milligan) 사건을 심리했다.
인구 대비, 흑인 유권자들의 투표권이 희석되었는지가 쟁점인 된 이 사건에서 보수파 대법관들이 “수정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1인 1표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특정 인종을 우대하는 것이 아닌, 인종 중립적(race neutral)인 투표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밀리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선거구 재조정 문제에 있어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차제에 우리도 이번 중간선거에서 올바르게 투표권을 행사해야할 뿐 아니라 투표권을 지켜갈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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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