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6일의 의사당 난동사태를 조사하는 하원 특별조사위원회가 아마도 마지막 모임이 될 것으로 보이는 9차 청문회에서 ‘품위있는 공화당원’을 향해 아낌없는 칭찬 릴레이를 펼쳤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날의 스타는 하원 특조위 부위원장인 리즈 체니였다. 도널드 트럼프에 결연히 맞선 대가로 공화당 지도부에서 축출되고, 정치생명마저 잃게 됐지만 그녀에게선 강렬한 도덕적 권위가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품위를 지킨 공화당원은 리즈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이 선거결과를 뒤집기 위해 협조를 요청하자 “온 마음을 다해 지키기로 맹세한 법을 가지고 놀지 않을 것”이라며 무 자르듯 거절한 애리조나 주 하원의장 러스티 바우어스는 강직함의 끝판 왕이다. 백악관 비서실장의 수석 보좌관으로 활동하던 캐시디 허친슨도 주변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선거결과를 뒤집으려는 대통령의 치밀하면서도 광기어린 시도를 낱낱이 털어놓았다. 베니 톰슨 특조위 위원장은 “돌이켜보건대 위원회 활동을 통해 수집한 모든 증거는 전적으로 공화당원들에게서 나왔다”며 “그것이 이번 청문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을 분리하는 이 같은 시도는 정치적 분별력을 보여준다. 하원 특조위는 트럼프에게 이미 질려버린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적 불이익을 무릅써가며 소신 증언을 한 공화당원들을 끌어안음으로써 특조위의 조사 결과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높였다. 그러나 품위를 지킨 공화당원들의 용기에 방점을 찍다보면 특조위의 발표내용에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완전치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앞으로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에 대한 위협은 트럼프뿐 아니라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나올 것이고, 이렇게 되면 품위 있는 공화당원들은 그들에게 그저 희귀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만다.
품위있는 공화당원들의 문제는 그들이 속한 정당 내부의 변질된 민주주의가 민주적 규범에 대한 그들의 확고한 결의를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수십 년 동안 체니를 비롯한 우익의 유력 정치인들과 목사 및 평론가들은 그들의 지지기반에 민주당이 전체주의라는 악마의 대변자라는 믿음을 깊숙이 새겨놓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화당 골수 지지층이 민주당의 승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총선 결과를 존중하는 후보들을 배척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대로 하원과 상원 및 중요한 주 정부의 선출직 관직에 지명을 받은 공화당 후보들의 다수가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이 거둔 승리를 의심하거나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다.
선거결과 불복의 여왕은 단연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다. 로버트 드레이퍼는 그의 저서 “대량 망상 무기”에서 그린의 부상과 체니의 추락을 연대기로 정리해 보여준다. 드레이퍼는 숱한 공화당 관리들과 전직 관료들은 둘의 위치가 반전되기를 원했다고 주장한다. “대량 망상 무기”에는 2021년 2월3일, 하원 공화당의원 총회에서 의장인 체니에 대한 신임투표 진행상황이 소상하게 적혀 있다. 당시 체니는 의장직을 지켰다. 당시 뉴욕에 선거구를 둔 온건한 공화당의원 탐 리드는 “리즈 체니를 내치고 마조리 테일러 그린을 남겨둔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고 되물었다.
회의 초반에 하원 공화당 대표인 케빈 매카시는 체니와 그린 모두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민주당이 그들의 입맛에 맞춰 우리들 가운데 한명씩 솎아내도록 놓아두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나를 당의 지도자로 선출했으니, 당을 이끌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매카시는 근본적으로 지도자가 아닌 추종자다. 드레이퍼에 따르면 5월에 이르러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매카시에게 “체니가 공화당의 짐이 되고 있다”며 “선거구 유권자들이 그녀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그린은 민주당을 악마로, 2020년 대선을 부정선거로 간주하는 유권자들과 깊숙한 교감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같은 당내 분위기가 그린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드레이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매카시는 그린을 그의 사무실에서 열린 고위 당직자 회의에 초대한 후 자신의 옆 자리에 앉혔고 모든 안건에 대해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 지난해 민주당은 그린이 음모론을 조장하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처단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소속 상임위원회에서 퇴출시켰다. 이에 맞서 매카시는 공화당이 하원을 탈환하면 그녀를 이전보다 영향력이 큰 상임위원회에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드레이퍼는 공화당 내부의 소식통을 인용해 매카시가 그린에게 당직까지 제안했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와 시에나 칼리지가 공동으로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에 비해 3% 포인트 가량 우세를 보이고 있다. 공화당의 하원 탈환이 유력시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공화당이 하원을 탈환할 경우, 매카시의 의중과 관계없이 그린이 당직자가 될 확률이 높다. 그녀는 지난해 1월6일 의사당에 난입했던 공화당 지지자들 중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에 진출한 최소한 한 두 명과 짝을 이루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팀의 전위대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그린의 ‘위대한 팀원’이 되겠다고 공언한 조지아 출신 공화당 하원의원 마이클 콜린스는 ‘투표기’라 적힌 쓰레기통을 폭발물로 추정되는 물체로 채운 후 총격을 가하는 선거용 비디오물을 제작했다.
이런 부류의 공화당원들이 의사당 난입사태 진상조사를 위한 하원 특별위원회를 해체하고 조 바이든을 탄핵하려 시도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린의 복수를 노릴 것이고, 애니메 비디오를 변조해 자신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를 살해할 것을 암시하는 듯한 영상을 트윗에 올렸다가 상임위에서 퇴출당한 폴 고사르는 오카시오-코르테즈를 비롯한 진보주의자들에게 상임위 의석을 배정하지 않으려 획책할 것이다. 공화당의원들은 최소한 한 차례 정부를 폐쇄할 것이고, 트럼프를 조사한 법무부에 보복 조사를 벌일 것이다. 만약 2024년도 선거 결과에 논란이 일면 공화당의원들은 승리를 자신들의 쪽으로 돌려놓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사실 공화당 유권자들이 그들을 의회에 보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회는 어떤 정치적 비용을 치르더라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려는 선량한 신념을 지닌 남녀들에 위해 유지된다.” 가장 최근에 열린 특조위 청문회에서 나온 체니의 발언이다. “다음번에 이들이 제 자리에 그대로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중간선거 이후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2017년부터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로 기고해온 미셸 골드버그는 정치, 종교, 여권에 관한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2018년 직장내 성희롱에 관한 탐사보도의 팀 일원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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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골드버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