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갑다!” 7년 만에 열린 설악산 흘림골

2022-10-21 (금) 양양=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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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박자박 소웁탐방 - 양양 서면 설악산 흘림골 단풍

강원 양양에서 서면은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지역이다. 전체가 산악이다. 그것도 보통 산이 아니라 가을철 가장 빼어난 단풍을 자랑하는 설악산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 장대 터널을 통과해 동해로 내달리던 차량도 이때만큼은 꼬불꼬불한 고갯길에서 주춤거린다. 골짜기마다 단풍만큼 화사한 복장을 한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위 절경과 어우러진 흘림골 단풍

강원 인제에서 한계령을 넘으면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지구다. 남설악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는 정상까지 오르는 가장 짧고 힘든 대청봉 코스와 상대적으로 쉬운 용소폭포 코스 2개의 탐방로가 시작된다. 여기에 올해 7년 만에 개방하는 흘림골 코스가 추가됐다. 용소폭포 코스 상부와 연결돼 주전골 단풍까지 즐길 수 있다.


한계령휴게소와 오색지구 사이 도로변에서 시작하는 흘림골 코스는 20년간 자연휴식년제로 묶였다가 2004년에 개방한 바 있다. 그러나 2015년 낙석 사고가 발생해 7년간 통제됐다가 일부 탐방로를 우회하고, 안전시설을 보강해 지난달 재개방했다.

지난 13일 오전 흘림골 탐방지원센터 입구에는 평일임에도 등산객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탐방로로 접어들자 바로 가파른 계단이다. 용소폭포 코스와 만나는 용소삼거리까지 3.6㎞ 중 등선대(1.2㎞ 지점)까지는 내내 오르막이고, 이후에는 계속 내리막이다. 코스가 짧아도 설악은 악산이다. 설악산 탐방로 중에서는 중·하 수준이지만, 경사가 심하고 계단이 많아 결코 가볍게 다녀올 코스가 아니다. 기본 장비와 함께 마음의 준비도 필수다.

시작부터 탐방로 오른편으로 우람한 바위봉우리가 동행한다. 일곱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칠형제봉’이다. 늘씬한 두 다리 사이로 물줄기가 길게 흘러내리는 모양의 ‘여심폭포’에 작은 전망대가 있다. 한층 우람해진 칠형제봉과 비슷한 높이로 고사목이 우뚝 서 있다. 깊고 험준한 산속에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조금만 더 오르면 산마루에 닿는데, 전망대 역할을 하는 등선대는 탐방로에서 약 200m 벗어나 있다. 길은 더 가파르고 일부 구간은 교행이 불가능해 오르내릴 때 사람 정체를 빚는다.

해발 1,002m 등선대는 깊은 산중에 불쑥 솟아오른 바위봉우리다.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여 설악의 비경이 펼쳐지는데, 그중에서도 서북 방향 한계령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압권이다. 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도로를 올라 잠시 쉬어가던 한계령휴게소가 한 발짝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뒤편으로 장엄한 산줄기가 감싸고 있다. 안내판을 보니 왼쪽부터 안산(1,430m), 귀때기청봉(1,578m), 끝청(1,610m), 대청봉(1,708m)이 파노라마로 연결된다.

정상 능선의 단풍은 이미 한풀 꺾였지만 한계령 앞쪽 산줄기와 골짜기에는 이제 막 울긋불긋 가을 색이 섞여 있다. 희고 우람한 바위봉우리와 어우러진 단풍이 장쾌하고 웅장하다.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다.

등선대부터 용소삼거리까지는 한두 군데 짧은 오르막이 있지만 대체로 내리막이다. 가파르기가 오를 때 못지않다. 바위에 바짝 붙은 일부 구간에는 낙석을 우려해 철망으로 터널을 만들었다.


길은 꼭대기에서 본 기암과 그 사이로 파고든 계곡을 따라 휘어진다. 등선폭포와 십이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시원한 물소리를 쏟아낸다. 물가의 고운 단풍이 눈길을 끌지만, 단풍보다는 기기묘묘한 바위봉우리가 압도하는 모양새다.

간식을 먹으며 쉬어가는 게 등산의 묘미인데, 흘림골 탐방로에는 쉴 공간이 부족하다. 등선대 꼭대기 전망대에도 끊임없이 등산객이 밀려드니 여유 있게 쉬는 건 불가능하다.

그림 같은 풍광에 탄성을 쏟아내는 것도 잠시, ‘인증사진’을 찍은 후에는 뒷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흘림골 코스는 용소삼거리에서 끝나지만 차를 댄 오색약수터 탐방지원센터까지는 2.7㎞ 더 걸어야 한다. 용소폭포 코스의 일부로 ‘주전골’로 불린다. 삼거리에서 조금 위쪽에 있는 용소폭포와 주전바위는 보고 와야 아쉬움이 덜하다. 용소폭포는 이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다.

넓은 암반에 얇게 펴진 물줄기가 한 군데로 모여 깊은 웅덩이로 떨어진다. 맑은 옥색 물빛이 커다란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부근에 시루떡을 층층이 쌓은 듯한 퇴적암층이 있다. 누구에게는 동전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 ‘주전(鑄錢)바위’로 불렸고, 계곡 명칭도 주전골이 됐다.

흘림골 하류에 해당하는 주전골은 계곡 폭이 한결 넓고, 탐방로도 대체로 순하다. 대신 계곡 좌우와 전후로 펼쳐지는 바위봉우리는 아래서 올려다보는 형국이라 한층 아찔하고 웅장하다. 설악산 정상에 첫눈 소식이 전해진 지 꽤 지났지만, 주전골 단풍은 이번 주 절정에 이를 듯하다.

흘림골 탐방로는 혼잡을 피하고 안전을 위해 하루 5,00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reservation.knps.or.kr)에서 예약하면 QR코드를 발급한다. 탐방로 입구에서 확인 절차를 거쳐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시간당 500~1,000명씩 입장시키고 있다. 흘림골 입구에는 주차장이 없다. 오색지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택시(대당 1만5,000원)로 이동해야 한다.

<양양=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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