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높아진 총영사관 문턱

2022-10-19 (수)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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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SF총영사관에서 총영사를 비롯한 영사들과 지역언론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프로필(간단한 약력) 요청을 거부했던 강현철 신임 SF부총영사가 2005년 외교부에 입부해 파라과이와 인도네시아 참사관으로 근무했고 부임 직전까지 외교본부 아태2 과장으로 일했다는 자신의 경력을 소개했지만 부임 후 두달만에 이뤄진 부임 인사는 뒷북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본보가 신임 부총영사에게 프로필을 요청한 것이 무리한 일인가를 묻자 윤상수 SF총영사는 “예전과 달리 법이 달라져서 부임해오는 영사들의 프로필을 공관장인 제가 (언론에) 주라 마라 할 수 없다”면서 “부총영사에게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럼 동포들이 총영사관에서 총영사 다음으로 높은, 공관 차석으로 온 부총영사를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이, 언론을 통한 근무 경력 발표도 없이 맞아야 하는 것인가, 그동안 총영사관이 “총영사관의 문턱을 낮추고 낮은 자세로 한인사회와 소통하겠다”고 해온 말은 입발림 소리였나, 공직자로 재외공관에 부임했으면 동포들과의 소통에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총영사의 답변은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 외교부 웹사이트에 들어가 ‘외교부 비공개 대상정보 세부기준’을 찾아보고, 16일 저녁(미 서부시간) 외교부 언론담당관(공보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사항을 문의했다. 송모 공보팀장은 “국장급 이상의 고위직 인사 경력은 백브리핑(back briefing, 공식 브리핑이 끝난 뒤에 비공식적으로 이어지는 브리핑)식으로 언론에 전달된다”면서 “부총영사는 국장급은 아니지만, 공관에서 중요한 자리이니 공관과 잘 이야기해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답변했다.

그런데 강현철 부총영사를 보는 단체장들의 시선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한 단체장이 동포 업무를 맡고 있는 강 부총영사에게 개인 셀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니 “저한테 연락할 일이 있으면 김경태 문화영사를 통해서 하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앞으로 강 부총영사와 같이 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기자도 총영사관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강 부총영사에게 개인 연락처를 물었더니 강 부총영사는 “윤홍선 정무영사를 통해서 하면 된다”면서 “제가 동포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서요”라고 답한 후 자리를 떴다. 기자가 이런 문제를 총영사관에 제기하자 공교롭게도 17일 오후 강 부총영사는 기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통해 개인 연락처를 공개했다.

동포 업무는 다른 게 아니다. 동포들의 사정을 잘 헤아려주고, 관심을 더 보여주고, 동포들과 소통하면서 총영사관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총영사관이 존재하는 목적과 이유를 성과로 증명해내는 것이다. 총영사관이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동포들과의 협력으로 이뤄내는 것이고, 동포들이 이뤄내고 싶은 일들은 총영사관의 지원으로 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총영사관과 동포들의 관계는 상생의 관계이지, 무슨 공직기관처럼 순서순서, 단계단계를 밟아 체계를 갖춰야 하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다.

이제 정광용 전 부총영사 이임 인터뷰 기사에 담지 못한 일화를 풀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어떻게 동포들의 자녀 일까지 다 꿰고 있느냐는 질문에 정 전 부총영사는 이렇게 말했다. 부임초 하루에도 수십명, 수백명을 여러 동포 행사에서 만나는데, 이분들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집으로 돌아오면 만나고 온 사람마다 구글 서치로 사진을 찾아 셀폰 연락처와 함께 뜨도록 올리고 만난 행사, 장소, 나눈 중요 대화들을 셀폰에 저장해두는 일을 계속 해왔다는 것이다. 정 전 부총영사가 이임할 때 거의 모든 한인단체에서 그에게 감사장을 전하며 아쉬워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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