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경력의 힘

2022-10-13 (목)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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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이유들로 인해 치과의사에 대한 알러지가 생기게 됐다. 오래 전 한국에서 살 때 치과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의사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무 설명 없이 치과 치료를 끝냈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아랫니 어금니 두 개가 나란히 쌍둥이처럼, 충치가 똑같이 이의 표면에 나란히 생길 수가 있을까 의아해 할 정도로 까맣게, 여기저기에 납으로 필링을 해 놓은 걸 보고 저절로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그 후 사랑니가 수시로 염증을 불러와 발치를 하러 갔는데 경험 부족한 의사를 만나 호된 고통이 있었다. 자정이 되어가는데도 피가 멈추지 않아 응급 지혈제를 맞고 겨우 피를 멈추게 했다.

그후 미국에서 신경치료를 한 어금니에 갑자기 다시 찾아온 통증이 견디기 어려워 이틀만에 평소에 알고 있는 여의사의 치과에 갔다.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환자가 없는데다가 보조 간호사도 없어 걱정은 좀 됐지만, 방법이 없어 믿고 맡겨 보기로 했다. 워낙 통증이 심해 갔지만, 일반 상식으로 발치가 최선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 여의사가 다시 찾아온 통증에는 신경치료보다는 발치를 해야 한다고 말하니 나중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맡겼다. 결과는 사람 이 하나 빼다가 두 사람이 초주검에 이르렀다. 초보자의 의술로 윗어금니 맨 뒤쪽 것을 빼자니 어렵기도 했겠지만, 난 몇 시간 동안 3번의 마취를 하고 많은 피를 흘리고 한쪽 얼굴 전체가 부어오르고 시퍼렇게 멍이 든 후에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은 피를 흘리며 집으로 갔다. 여의사도 난감했는지 그 다음날 경험 많은 노의사에게 나를 보내 기적처럼 단 2초만에 발치를 했다.

그때 경력의 힘을 생생히 체험했다. 무슨 일이나 누구나 처음부터 프로처럼 잘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전화라도 한번 해서 몸이 어떤 지 확인을 할 줄 알았지만 그런 인간미는 없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 그 빈 곳을 임플란트를 하려고 CT 스캔을 했더니 부러진 어금니뿌리 하나가 잇몸 속에 그냥 남아 있다고 한다. 그걸 확인한 나는 그때의 고통이 머리속을 스쳐가며 임플란트 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 당시 회사에 며칠 동안 출근도 못하고 오랫동안 멍이 들어있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몸에 많은 부담을 주는 피해를 입었고 서로 아는 사이였지만 모르는 척하는 인간미에 놀랐을 뿐이었다. 또 다른 의사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례가 있었다. 의술도 참 중요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따스한, 인간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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