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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있는 IRA

2022-10-12 (수)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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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두고 미국과 한국 사이의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고 있다. 미 의회 통과까지 된 마당에 현실적으로 개선 가능성이 낮지만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재부무가 만드는 법안 세부규정을 놓고 어떻게든지 한국 자동차 브랜드에 미치는 불이익을 없애 보려는 것인데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이 사안에 매우 민감한 것은 물론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미래차 산업과 관련해 두 회사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IRA에 대한 한국 정부와 산업계의 반응을 살펴보면 억울하다는 입장이 많다. 어떻게 동맹국인 미국이 그럴 수 있냐는 것인데 구식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혈맹’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배신을 당했다고 표현하는 이들까지 있다. 억울할만 하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수십억달러 규모의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조지아에 전기차 공장까지 지어서 미국에 대규모 채용이 약속된 생산 기지를 만들어주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이는 국내 제조업 재부흥을 목표로 하는 바이든 정부의 대표적인 성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디테일을 살펴보면 미국에 뒤통수를 맞은(?) 한국이 순수한 희생자라고 하기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 IRA와 같은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미국만 할리는 없다. 그동안 한국 정부도 전기차를 사면 상당한 규모의 보조금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운전자에 지급해왔다. 그런데 이는 한국 자동차 업체에 유리한 방식으로 집행돼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IRA처럼 노골적으로 생산 지역을 구분해 특정 브랜드 전기차 모델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자동차 가격을 기준으로 보조급 지급 여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 보조금 정책을 살펴보면 현재 5,500만원 이하인 전기차에만 100% 혜택을 준다. 그런데 해당 금액은 사실 한국 전기차와 해외 브랜드 전기차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현대차와 기아에서 만드는 아이오닉5, EV6, 최근 출시된 아이오닉6까지 보조금을 전액 받을 수 있지만 테슬라의 모든 모델을 포함한 글로벌 브랜드 전기차들은 50% 보조금을 수령하거나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국 IRA 입법 전부터 사실상 한국 정부는 자국 전기차 시장에서 비관세 무역장벽을 쳐온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담당하는 환경부는 최근 국내에 서비스센터를 충분히 갖춘 브랜드를 중심으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노골적으로 현대차와 기아에 보조금을 몰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두 회사의 강력한 전기차 경쟁자인 테슬라가 한국에 한국 자동차 브랜드들처럼 많은 서비스센터를 만들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행태를 보면서 미국 정부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IRA를 만들어서 한국 뒷통수를 때린게 아니라 정당한 대응을 한 것이라고 볼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시장 수출 규모다. 현대차와 기아는 상반기에만 미국 시장에 거의 70만대를 팔아치웠다. 세계 시장에서 거두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서 벌어들인다.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 시장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한국에 전기차를 팔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테슬라의 경우 공급이 달려서 고객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에 자동차를 출고하느니 이참에 중국에 좀 더 팔아서 큰 시장을 노리는게 나을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경제 정책과 관련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신산업 개발을 위해 국내 시장을 미래 산업의 ‘테스트베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국 업체에 유리하게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테스트베드의 자유로운 시장 경쟁이 가능할리가 없으니 말이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한국의 경제 입지를 고려해봤을 때도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테슬라 같은 해외 업체에게도 불리하지 않게 하는 것이 맞는 방식이다.

한국에도 IRA는 있다. 미국 정부와 협상해 미국의 IRA를 고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먼저 한국의 IRA부터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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