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마음의 위치

2022-10-11 (화)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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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늦은 밤 비행기를 탔던 날이었다. 지루했던 비행기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친구를 볼 생각에 물 흐르듯 터미널을 지나 공항 입구로 걸어 나왔다. 예상치 못한 추위에도 곧 다가올 일 년 반 만의 재회에 없던 열까지 올라오는 듯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할 일은 친구의 차를 발견하자마자 재빠르게 내 몸과 가방을 그녀의 차 안으로 던지는 것. 오랫동안 눈에 불을 켜고 친구의 차를 목놓아 기다리는 중에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는 길이 이상하게 막혀 좀처럼 움직이질 않는다며 다음 건물 입구로 와줄 수 있겠냐는 간단한 부탁이었다.

큰 소리로 대답은 했는데 막상 걸어가다 보니 마치 옆 건물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이질 않았다. 다 큰 어른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에 당황한 것도 모자라, 생각지도 못한 핸드폰 배터리가 1%밖에 남지 않은 것까지 확인하고 나니 아무도 없는 휑한 공항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다행히 대부분 스마트폰에는 서로 동의 후 실시간으로 각자의 위치를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의 내가 천만다행으로 친구와 위치 공유를 켜 놓아준 덕에 그날 새벽 나는 안전하게 친구와 재회할 수 있었다.

위치 공유의 필요성을 제대로 느꼈던 그날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마음의 위치 공유를 꿈꾸기 시작했다. 가족 간의 대화에 오해가 쌓일 때,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 담고 있던 꿈이 어느 날부턴가 흐릿해질 때, 마지막으로 배를 잡고 웃었던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꼭꼭 숨어있는 마음들의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줄 수 있는 통로가 있다면 어떨까. 말로는 전달이 되지 않을 만큼 깊은 마음의 위치를 전달해 상대방에게 나의 무한한 사랑을 직접 보여줄 수 있다면, 자신감을 모두 잃고 어깨는 쭉 늘어져 혼자 어두운 길을 헤맬 때 누군가 그 위치로 ‘I found you!’라고 외치며 찾아와 담요 하나 함께 깔고 앉아줄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조화롭게 공유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분명 좀 더 따듯한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심을 다 해 마음의 위치가 곧 우리의 말과 행동이 되어 주길 바란다. 지도를 보여 위치를 설명하듯 필요할 때마다 세심하게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설명해주고, 말로 표현이 잘되지 않는 마음은 직접 행동으로 동행하며 보여주고, 조금 더 북돋고 늘 고마워하며 서로를 칭찬하며 살 수 있도록.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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