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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해야 할 바이든의 이민정책

2022-10-03 (월) 파리드 자카리아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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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스웨덴은 완전히 이질적인 유럽국가다. 이탈리아는 햇빛 좋고 혼잡한 지중해 연안의 가톨릭 국가인 반면 스웨덴은 춥고, 질서정연한 북부 유럽의 개신교 국가다. 지난 수십 년간, 두 나라는 확연히 댜른 정치궤적을 그렸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파시스트 정당의 급속한 부상을 목격 중이다.

현재 두 국가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중도좌파의 지지기반 붕괴와 일치한다. 이들 극우정당은 바이든 행정부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민 문제에 집중한다.
이탈리아의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조르자 멜로니는 카리스마 넘치는 45세의 정치인이다. 그녀의 캠페인은 세계화에 대한 공격과 함께 조지 소로스가 망쳐놓기 이전의 호시절을 복원하겠다는 듣기 좋은 이야기로 채워진다.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 비디오에서, 조르자는 “기독교인, 엄마, 이탈리아인 등 세계화 세력이 조롱하는 모든 것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민은 그녀가 내세우는 정책 프로그램의 요체이다. 그녀에게 “국가란 국경과 그 국경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만 존재한다.” 지중해를 통해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들의 흐름을 막기 위해 필요할 경우 해상봉쇄를 단행하겠다는 공약도 스스럼없이 내민다.


스웨덴의 극우 민주당 또한 이민 카드를 최대한 활용한다. 범죄 증가, 갱 폭력과 이민자들의 사회보장제도 악용 사례가 그들이 늘어놓은 단골 메뉴다. 이들의 주요 선거공약은 유럽에서 가장 후한 이민 시스템을 갖춘 스웨덴을 가장 제약이 심한 나라로 바꾸기 위해 작성된 30개 항의 이민 정책안에 담겨있다. 스웨덴 민주당의 활력 넘치는 지도자인 올해 43세의 임미 오케손은 지금은 “스웨덴을 맨 앞에 놓아야할 때”라고 말한다.

이들 두 명의 정치인과 그들이 속한 정당은 선동에 능하다. 그러나 그 선동의 한 복판에는 중요한 진실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이민이다. 여러 유럽 국가에서 이민은 이미 통제를 벗어난 상태다.

‘통제불능’은 이민자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특정 국가에서 어느 정도가 적정한 이민 수치인지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필자가 말하려는 바는 현재 이민이 극도로 혼란스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마어마하게 팽창한 이민 흐름, 기승을 부리는 밀입국과 고삐 풀린 범죄, 이민신청자들을 심사하고 받아들이는 법적제도의 완전한 붕괴로 유럽 국가들은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 스웨덴 인구의 20%는 해외태생으로 미국의 14%보다 높다.

미국은 유럽과 다르다. 미국인의 정체성이 다분히 정치적인데 비해 유럽 국가들의 국민 정체성은, 최소한 역사적으로나마, 종족과 종교 및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느 쪽이건, 하나의 국가가 흡수할 수 있는 이민자 수에는 제한이 있다.

1970년대의 미국 인구 가운데 해외출생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했다. 그 이후 이 수치는 거의 세 배로 확대됐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대다수의 국외자들이 미국에 동화되고 흡수될 것이라 믿는다. 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숱한 외국인들이 정부가 통제하는 정당한 심사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온다는 점이다. 국경으로 몰려온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난민지위를 주장하며 입국한 후 그대로 눌러 앉는다는 이들의 지적은 옳다.

미국의 난민제도는 완전히 망가졌다. 이 제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 여파 속에서, 즉각적이고 끔찍한 박해 위험에 처한 외국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안됐다. 오늘날 많은 난민 신청자들은 가난, 질병, 범죄와 강제이주 등 미국에서 더 나은 생활을 꿈꾸던 전통적 이민 희망자들이 본국에서 겪었던 것과 동일한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들은 정중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단지 그러한 이유로 망명을 신청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이민절차를 우회하기 위해 제도를 남용한다.

현재 미국의 망명절차는 오작동하고 있다. 이미 심한 적체현상을 보이는데다 담당 직원들의 수도 턱없이 모자란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는 고의적으로 이민 적체를 심화시켰다. 이로 인해 평상적인 비자 발급업무까지 지장을 받고 있다. 인도에서 정기적인 상용비자를 발급받으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장학금을 지급받은 학생조차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취업비자를 발급받기란 말 그대로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제법 기세가 오른 상태다. 그러나 단 한가지 이슈로 이 모두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난민요청 심사를 가속화하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냈지만 적체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현재 계류 중인 난민신청 건수는 74만 4,000건에 달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부가 이민 전반과 국경을 컨트롤하고 있음을 과시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보다 신속하고, 예측가능하면서도 불법 이민을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이민제도 개선안을 제안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포퓰리스트 우파는 - 이탈리아와 스웨덴에서 보듯- 중간 선거를 앞두고 당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민 카드를 앞세워 적극적인 공세에 나설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파리드 자카리아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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