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의 구상은 이전의 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 키이우를 압박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족할만한 양보를 끌어내 협상을 매듭지음으로써 트럼프가 노벨상을 탈 수 있는 판을 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실패한 정책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더욱 고약스러운 것은 트럼프의 해법이 우크라이나의 입지가 매우 취약한 시점에 나왔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의 전황보고서는 러시아와의 전투가 가열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단의 조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는 얼마 버티지 못한 채 전쟁에서 패할 것이고, 러시아는 싱징적 승리 이상의 것을 손에 넣게 된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산업 및 철도 중심지인 포크롭스크는 이미 위태롭게 휘청이고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무자비한 압박공세를 견뎌냈다. 그러나 키이우 인디펜던스지에 따르면 이 지역을 둘러싼 러시아군의 포위망이 완성단계에 있고, 우크라이나가 남은 방어선을 지원할 수 있는 통로는 고작 10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최근 프코롭스크 주변에 포진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에 비해 8대 1의 숫적우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300명 이상의 러시아군이 이미 도시 안으로 침투했으며, 모스크바는 내부의 혼란을 부추키기 위해 전선 후방에 파괴공작 팀을 심어놓으려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락될 경우 포크롭스크는 2년여 사이에 러시아군의 수중에 떨어진 최대 도시 지역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한 개의 도시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전쟁기간 동안 도시 지역 요새들에 인접한 포크롭스크는 핵심 보급로의 역할을 담당했다. 우크라이나는 다급한 전황을 감안해 일부 군수품 공급망을 바꾸었으나 포크롭스크가 함락될 경우 도네츠크의 전체 방어선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모스크바의 우세는 전술적 탁월성이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끈질긴 지구력에서 나온다. 미국 전쟁연구소가 입수한 러시아의 예산안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9월 사이에 매달 평균 2만9,000명이 입대 계약서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는 같은 기간동안 러시아가 매월 3만 5000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산한다. 다시 말해 모스크바는 새로 모집한 신병보다 전투에서 잃은 군인들의 수가 더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두둑한 봉급 패키지를 이용해 전쟁을 이어가기에 충분할 만큼 빠르게 병력손실을 보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용병전략을 모방할 수 없다. 올해 첫 일곱달 동안 확인된 우크라이나군의 탈영자만도 11만명을 헤아린다. 일부 지휘관들은 대대병력 가운데 전투가 가능한 보병들의 수가 열 명 미만이라고 하소연한다. 우크라이나는 동원령을 통해 매달 3만명 가량을 끌어모으고 있으나 이들 중 전투에 적합한 인원은 전체의 1/3 정도에 불과하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육군의 규모가 100만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군사분석가는 탈진한 병사들을 교체하려면 그보다 최소한 3배가 많은 병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탈진은 우크라이나군이 직면한 전략적인 위협이다. 르몽드지에 따르면 숫한 우크라이나 장병들은 병력 교체 없이 전선에서 100일에서 200일을 보낸다. 게다가 하늘을 뒤덮은 러시아의 드론 탓에 휴식을 취하거나 움직이기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위기를 초래하거나 최소한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는 주요 원인은 외부지원의 붕괴다. 미국은 사실상 대규모 군사지원을 중단했다. 최근들어 일부 무기 지원이 재개되긴 했지만 유럽이나 다른 동맹국들이 여기에 필요한 돈을 지불한 경우에 한한다. 장거리 미사일이나 패이트리엇 포대, 정밀 유도 로켓과 같은 핵심 시스템은 조달 병목현상으로 지연되거나 재고에 대한 우려로 종종 중단된다.
유럽이 공백을 채우겠다고 약속했으나 어림없는 얘기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100만 발의 포탄을 1년 이내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시한을 놓쳤다. 탄약 공급도 전장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원유 인프라처럼 러시아 내지 깊숙이 위치한 전시경제의 생명줄을 타격하는데 필요한 장거리 미사일 시스탬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워싱턴은 이처럼 의미있는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무기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우크라이나에 허용하고 있다.
전쟁자금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양측의 적대행위가 2026년말에 끝난다고 가정할 경우 2027년 한해동안 우크라이나는 최소한 650억 달러에 달하는 외부재정지원을 필요로 할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이는 실현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견해가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올해의 전비만 해도 우크라이나 국민총생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둘러싸고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벨기에는 사법 리스크와 모스크바의 잠재적 보복에 관한 우려 탓에 EU의 러시아 동결자산 사용에 반대했다. 모스크바의 기세등등한 협박에 유럽이 굴복한 셈이다.
트럼프 팀이 푸틴의 요구대로 키이우를 압박해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러시아측에 추가로 양보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백악관의 다른 관리들에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한 우크라이나 특사는 내년 1월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런 양보를 압도적으로 거부한다. 우크라이나 헌법은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은 영토변경을 금지하고 있다. 러시아가 실제로 양보를 얻어낸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강화해 벨라루스와 같은 종속국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전략은 늘 서구보다 더 오래 버티는 것이었다. 푸틴은 미국과 유럽이 이번 전쟁에 피로감을 보일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모스크바의 승리가 아니라 서구의 내부 분열과 기능장애로 인해 더욱 강화되고 있디.
대대적인 궤도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머지않아 유럽의 중심부에서 공격적인 독재정권의 손에 현대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첫 패배를 넘겨주는 헙상를 주재하게 될지 모른다. 지난 80년 동안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이 지역이 미국의 국익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해왔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노벨평화상은 항복이 아닌 평화에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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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