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취소됐다. 체크인을 하기 위해 3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했는데, 무인 키오스크 체크인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체크인 카운터로 향하는데, 사람들의 불만 섞인 아우성이 들려왔다.
비행기 출발 시간을 불과 3시간 남겨두고 갑작스럽게 비행기 운항이 취소된 것이다. S 항공사 직원들은 ‘나도 항공편 취소 이유를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한편으론 그들도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자신들도 그저 항공편 취소 사실을 긴급하게 보고받았을 뿐, 이에 대한 책임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제서야 미 전역의 항공편 취소 대란의 실체를 몸소 확인했다. 올해 수없이 항공편 취소 관련 기사를 썼지만, 내가 겪어 보기 전에는 그저 다른 세상의 일일 뿐이다. 내가 직접 항공편 취소 피해를 당하자, 자세한 안내 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항공편 취소가 얼마나 억울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를 실감했다.
우선 환불을 요청하기 위해 체크인 카운터 앞의 긴 줄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다른 항공편을 검색했다. 당시 시각은 오후 6시30분. 미시간에서 LA를 향하는 당일 비행기는 D 항공사의 오후 11시 항공편 하나뿐. 하지만 항공편 출발을 약 4시간을 앞두고 우리 가족 4명의 자리를 확보하긴 불가능했다. 작전을 바꿔 다음날 오전 항공편을 찾았다. 가장 빠르게 LA를 향하는 비행기는 오전 8시 출발이었다.
대체 비행기 티켓팅을 마치고, 그날 밤을 보낼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오후 9시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가 취소됐으니, 우리 가족은 꼼짝없이 미시간에 갇히고 말았다. 영화 ‘터미널’이 생각났다. 만약 짐을 부치고 공항 안에서 항공편 취소 소식을 들었더라면, 영락없이 ‘터미널’ 영화 속 주인공 처지가 될 뻔했다. 실제 몇몇 승객들은 이미 짐까지 부친 상황에서 항공편 취소 소식을 듣고 카운터 앞에서 항공사 직원들과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숙소 예약까지 마친 우리 가족은 당일 환불을 포기하고, 대기 줄에서 빠져 나왔다. 항공사 직원들의 매우 늦은 일 처리 속도를 감안할 때, 몇 시간이고 줄을 서 봐야 당일 환불을 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깨끗하게 포기하고 숙소를 향했다. 공항 근처 호텔을 향하는 셔틀 버스 안에서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무래도 현실감이 없었다. 어린 두 아이는 내일 학교를 갈 수 없다는 사실에 기뻐 보였다. 철이 없는 두 아이를 옆에 태우고 남편과 나는 생각이 많았다. ‘내일 근무는 어떻게 해야 하지’, ‘LA 도착은 무사히 할 수 있을까’, ‘환불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등등 걱정과 잡념이 꼬리를 물었다.
호텔에 가서 노트북을 켜고 이것 저것 알아보니, 남편이 항공편을 예약할 때 ‘AIG 여행보험’을 가입해 둔 덕에 대체 항공편, 렌트카, 숙박비, 식비 등 항공편 취소로 인해 발생한 모든 추가 비용을 상환 받을 수 있었다. 단, 우리 가족이 낭비해야 했던 시간들에 대해서는 보상받을 수 없었지만.
이번에 항공편 취소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항공편 취소 소식을 접하자 마자 바로 새로운 항공편 티켓을 알아본다. 2. 대체 비행기가 하루 뒤일 경우, 공항 근처 숙소를 알아본다. 3. 항공편 구매 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플래티넘 또는 체이스 사파이어 신용 카드 등 여행 지연 및 취소 보장이 가능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게 좋다. 4. 일정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 ‘익스피디아’ 등과 같은 플랫폼 보다는 항공사 웹사이트에서 직접 항공편을 구매하는 게 향후 항공편 취소 및 지연 등의 문제에 대처할 때 유리하다. 5. 여행보험은 무조건 들어 두는 게 안전하다.
결국 우리 가족은 무사히 LA로 돌아올 수 있었고, 현재 여행 보험을 통해 추가 비용 상환을 처리 중에 있다. 일주일이 지나 S 항공사로부터 전해 들은 업데이트 소식은 ‘승무원이 부족해 갑작스럽게 항공편이 취소됐다’는 사실이었다. 여행 수요는 급증하는 한편 팬데믹에 따른 여객 수요의 감소로 여객 노선이 축소 운항 되고, 승무원 인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업이 이뤄지고 있어 앞으로도 항공편 운항 취소 문제는 꾸준히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미리 대비해 놓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여행객에게 돌아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할 때 여행자 보험은 필수인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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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