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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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전, 월남에서의 오늘을 떠올리며

2022-09-21 (수) 백 광 알렉산드리아,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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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월남 다낭의 차이나 비치(China beach), 세계 최대의 미군 군수 병참기지(Naval Support Activity) 지하 벙커에 저장된 수 천 톤의 화약고가 밤새 폭발했다. 차이나 비치와 Tri-angle이 초토화되는 이 비극의 밤은 월남전 패망의 근원일 수도 있었다. 지붕을 뚫고 떨어진 1톤짜리 파편이 책상 위에 내려 박힌 참상을 보는 순간, 악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간신히 벽에 기대어 섰다. 반백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트라우마는 가끔 뇌리에서 움틀거리며 그날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고,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신실한 신자가 되리라는 보편타당한 바람은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고, 뜬 구름처럼 흘러가고, 일등은 못 되어도 꼴찌는 면하고, 부자는 못 되어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면서 쥐꼬리만큼 남은 시간 귀하게 만난 인연들과 같은 하늘 아래 오손도손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마음 쓰이는 하루하루의 일과이다.

다낭 시내를 흐르는 메콩강변의 벤치에 앉아서 버드와이저 맥주로 목을 적신다. 간밤의 참상을 알고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도도히 흐르는 메콩 강은 수많은 세월 베트남의 검게 타 버린 역사의 애환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묵묵히 흐르리라.
헤밍웨이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의 마지막 허무의 장면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연인(간호장교)과 뱃속의 핏줄을 잃고 비애와 허탈을 가눌 길 없어 길거리 빈 깡통을 툭툭 차며 비틀거리는 사나이의 심정, 옆구리에 뾰족 드러낸 권총 총구를 바라보면서 나는 속삭였다. 돌아가자고.


이제 온 백 년의 내 인생의 서사시에서 반백년의 트라우마 ‘메콩강’에 밑줄을 그으면서 거짓말을 못하는 내 인생의 뒷모습, 세월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사람이 목숨 걸고 추구하는 성공과 돈, 인간 본연의 순수성과 삶의 경이로운 가치로서 우리들 삶의 속살을 성찰해 보면 실상은 최고의 성공은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다.
세상에서 인간 최초의 말문인 ‘엄마’, 샘물같이 맑은 영성, 영혼이 조각한 최고의 걸작, 아름다운 품성, 인성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의 토양이다라고 세계적인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말했다.

한국의 ‘효’ 사상은 세계 인류 문화에 공헌한 세계 인류 무형문화재로 유네스코에 등재되며 세계문화강국, 생활의 문화강국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다.
수도원의 삶이 수련인 것처럼 세속의 삶 역시 수련이다.
인간 신체 구조의 이중나선인 성(聖)과 속(俗), 지성과 관능 속에서 꾸밈없는 소박한 우리 서민의 영성은 꾸준히 자기 성찰과 직관으로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고 오늘의 행복이 내일을 이끌어 준다며 아모르 파티, 멋지게 살고 멋지게 마무리 하자고.
으악새 울지 않아도 가을은 찾아왔고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지나간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고복수의 짝사랑, 유난히 가을을 타는 나는 국적 없는 세상에서 국적 있는 정서의 DNA로 오늘도 불러본다.

<백 광 알렉산드리아,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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