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서늘하다. 갑자기 섬뜩하다. 뜰을 보니 지친 녹색이 가을을 품고 있다. 열매들이 익으려면 아직 햇빛이 더 오래 비추어주어야 하는데. 막 피기 시작한 꽃잎들과 무성한 나무잎새로 스며드는 서늘한 바람. 꿈을 접으라고 하는 것 같아 우울하다.
계절은 나보다 먼저 달려간다. 언제나 그랬다, 나의 시간은 느리고 자연의 시간은 내 삶을 휘어잡고 언제나 앞서 갔다. 머리속은 겨울눈이 벌써 온 것 같다. 하얗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떠오르지만 곧 지워버렸다. 대신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불러왔다. 그래도 실망감이 가시지 않는다. 여전히 계절은 꿈을 접으라고 말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로마의 개선장군들이 시가지로 들어오는 화려한 마차 안, 구석에 꾸부려서 험상궂게 생긴 노예에게서 반복해서 듣는 말이다. 이것은 당시의 관례로 전쟁이라는 살상의 현장에서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을 상기시킴이라고 한다.
메멘토 모리를 일생동안 생각하며 산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존 셸비 스퐁 성공회 사제이다. 그는 과정신학자로 많은 책을 내면서 책 서문에 여러 번 이번이 마지막 책이 될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었다. 그 이유는 그가 진정으로 그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8세 때 아버님 장례식에서 친척들 가운데 한분이 ‘스퐁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오래 살지 못 해. 너도 준비해야 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은 그를 서둘러 누구보다도 먼저 학교와 일과 연구와 책 쓰는 일을 하게 했다. 그는 2021년 90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언제나 그의 생애를 따라 다녔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알차고 긴 삶을 살았다.
카르페 디엠은 호라티우스의 시 송가에서 유래되었다. 영어 번역은 ‘Seize the day 현재를 움켜잡아라’이다. 송가에서 “지금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인생의 시간은 우릴 시기하며 흐른다네/ 현재를 잡게 미래에 대한 믿음은 최소한으로 해두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이 말이 나온다. 미 명문 웰튼 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어선생님 키팅(로빈 윌리엄스 역)이 공부로 찌든 학생들에게 로버트 해리의 시 ‘소녀들에게의 충고’를 읽어주면서 강조하는 말이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동안/ 장미 봉오리를 모아라/ 늙은 시간은 끊임없이 날아가며/ 오늘 미소 짓는 바로 이 꽃도/ 내일이면 죽으리라.”
그렇게 열심히, 해만 뜨면 뜰에 나가, 심고 가꾸며 아름다운 나의 정원의 모습을 꿈꾸어 왔다. 땅속의 돌을 파고 나르고 나무를 치고 자르며 뜨거운 햇빛 아래 흐르는 땀이 스며들어 눈은 따갑고 입에서는 짠맛을 느끼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젠 접으라고 한다. 쓸쓸하다.
시간이 내게 줄 것은 오로지 시들고 떨어져 죽음을 맞을 준비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유쾌하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나’, 실존하는 ‘나’가 해체되는 것을 말한다. 죽음과 함께 오는 감정은 상실, 이별, 잊혀짐, 억울함 등으로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 어두움의 악마처럼 검은 연기로 솟아오른다.
그러나 어두움에 빛을 대조하면 빛이 아름답듯이 죽음의 생각에 삶을 대조하면 삶은 휘황찬란한 축제이다.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말 ‘내일을 믿지 말라. 오늘을 알차게 보내라(카르페 디엠)’는 말이 빛으로 내 마음에 들어온다.
<
김은영 기후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