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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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라는 헛꿈

2022-09-1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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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정책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 첫 작업으로 2018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에 북한을 참가시키고 남북 단일팀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인 끝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후 문재인은 2018년 한 해에만 김정은과 세 차례 만났다. 이 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첫번째 정상 회담에서는 둘이 남북 군사 분계선을 오가는 쇼가 벌어졌고 도보 다리를 오가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공개됐다.

그 뒤 채 한 달이 안 돼 5월 26일에는 판문점에서 제2차 정상 회담이 열렸고 같은 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정상회담을 열고 미국은 북한의 체제 보장을, 김정은은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그 여세를 몰아 문재인은 9월 19일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 모인 15만 시민들 앞에서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 천명했다”면서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 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고 말했다. 문재인과 김정은은 그후 백두산 천지를 함께 오르며 우정을 과시했고 한반도에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오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허상이었음이 드러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다음해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트럼프는 6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4,000km를 달려온 김정은을 빈 손으로 돌려 보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대신 영변 비핵화를 들고 나오면서 대북 제재를 풀어 달라고 하자 이를 거절한 것이다.

그 이후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문재인은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선원을 안대로 눈을 가린채 강제 북송하는가 하면 김여정이 불쾌감을 표시하자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리는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드는 등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으나 돌아온 것은 “삶은 소대가리” 등 욕설뿐이었다.

2020년 6월 16일에는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 공단내 남북 공동 연락 사무소가 폭파됐고 김정은이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하면서 해금강 호텔과 아난티 골프장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문재인은 김정은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 타임지는 2021년 아시아판 표지에 문재인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는데 여기서 문재인은 김정은을 “매우 정직하며 … 열정적이고 의지가 강한 인물”로 평했다. 그러나 타임지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문재인의 김정은에 대한 변함없는 변호는 망상에 가깝다”고 썼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뚜렷하다는 믿음에 기초한 문재인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그의 퇴임과 함께 종말을 맞았다. 아직도 이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는 사람을 위해 지난 9일 북한 정권 창립 74주년 행사에 참석한 김정은은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어떤 협상도 …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앞서 8일 열린 북한 최고 인민 회의는 ‘핵무력 정책법’이란 것을 채택하고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정책 결정권을 가진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핵무력은 …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고 명시했다. 이 법은 북한의 핵 선제 사용권까지 언급하고 있다.

지금 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고철 수준이고 이를 현대화할만한 경제적 능력은 없다. 북한이 믿을 것은 핵뿐이며 핵을 포기한 이라크의 후세인과 리비아의 가다피의 운명은 이미 봤고 우크라이나 사태는 현재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놓겠는가는 물을 필요도 없다.


북한은 그렇다 치고 한국의 태도는 어때야 할까. 핵과 맞설 수 있는 것은 핵뿐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핵 우산 아래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하지만 최근 미국이 ‘인플레 감축법’을 통과시키면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외한 것만 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우방의 이익은 한순간에 버려질 수 있는 게 국제 관계다.

‘평화 헌법’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 정식 군대도 없지만 필요하다면 3일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과 협정으로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순도 90% 이상의 플루토늄 추출이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현재 플루토늄 46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원자 폭탄 6,000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일본이 하는 일을 한국이 못하란 법은 없다. 더 이상 공허한 한반도 비핵화론을 외치기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잠재적 핵 개발 능력을 쌓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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