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하르키우
2022-09-12 (월)
한기석 / 서울경제 논설위원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봄 모스크바 전투에서 소련에 패퇴한 독일은 방향을 틀어 소련 남부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를 겨냥했다. 모스크바 전투에서 자신감을 얻은 소련은 수천 ㎞에 달하는 전선에서 독일군을 모조리 몰아낸다는 대담한 작전을 세웠다. 소련은 남부 전선의 요충지인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선공에 나섰으나 이미 준비하고 있던 독일의 반격에 속절없이 무너져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패했다. 이후에도 하르키우는 수차례의 대규모 전투로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하르키우는 약 14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다.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모스크바·레닌그라드와 함께 소련의 3대 공업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이곳에 있는 하르키우대는 키이우대·키이우공과대와 함께 우크라이나 3대 대학으로 유명하다. 유산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일리야 메치니코프가 이 대학 출신이다. 소련 시절에는 우크라이나소비에트공화국의 수도였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의 첫 수도로 불린다.
이곳은 주민의 과반이 우크라이나인이지만 러시아계 주민도 40% 정도여서 러시아의 입김을 무시하기 어렵다. 2014년 4월 유로마이단 혁명(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의 통합을 지지하는 시민혁명)에 반발한 친러 시위대가 하르키우 주정부 청사를 점령한 채 하르키우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특수부대를 파견해 친러 시위대를 하루 만에 진압했지만 양측의 갈등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러시아가 하르키우의 강제 병합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짜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곳은 러시아 국경에서 불과 50㎞ 떨어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부터 전투가 벌어졌다. 양국은 하르키우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공방을 벌이고 있다. 현재는 러시아가 하르키우 영토의 30% 정도를 장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름 반도 병합 때도 주민투표 결과를 토대로 강제 병합을 마무리했다. 이번에도 가짜 주민투표를 통해 병합을 기정사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주권국가로 존재하려면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있어야 한다.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동맹을 강화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한기석 /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