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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블로우 칼럼] 바이든의 사과

2022-09-12 (월) 찰스 M. 블로우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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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이마에 뿔이 돋았다. 아니, 정말 화가 났다기보다 바이든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문제 삼으며 짐짓 격앙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일컫는 ‘MAGA 공화당원’을 민주주의 위협세력으로 규정하는 한편 트럼프주의에 연료를 제공하는 정치철학에 ‘세미 파시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주었다.

바이든의 발언에는 문제 삼을 게 전혀 없다. 그저 입바른 말일 뿐이다. 솔직히 필자는 바이든이 공화당을 향해 조금 더 날선 발언을 해주길 원한다. 도를 넘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애써 발언수위를 조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바이든은 2주전 메릴랜드에서 열린 민주당 기금모금행사에서 ‘세미-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입에 올렸다. 당시의 정확한 발언 내용은 이렇다. “트럼프만이 문제가 아니다. 뭐랄까, 세미-파시즘을 떠받치는 정치철학 전부가 문제다.”

공화당은 바이든이 미국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게 심각한 모욕을 가했다며 그의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그들이 한 짓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어야 한다. 트럼프는 일관되게 파시스트 성향을 드러냈고, 인종주의와 여성혐오, 백인 민족주의를 지지했다. 그럼에도 공화당 유권자들은 그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냈고, 두둔했으며, 표를 몰아주었다.


파시즘 발언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이후 바이든은 “보수적인 공화당원들을 존경하지만 MAGA 지지자들은 아니다”며 두 그룹의 분리를 시도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그들을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마치 한 올의 머리카락을 둘로 나누는 것만큼이나 분리가 힘들다. 2020년 선거에서 공화당원과 공화당 성향의 무당파 유권자들 가운데 92%가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지난주 공개된 퀴니피액 대학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의 73%가 아직도 트럼프에게 호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고, 72%는 그가 2024년 대선에 재출마하길 원한다. 공화당원 가운데 압도적인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한다. 그러다보니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존경할만한 보수주의자들의 층은 지극히 얇다.

이번에 터져 나온 그의 날선 평가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이 비난 여론에 민감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주 필라델피아 연설에서 바이든은 “MAGA 공화당원들은 공화국의 토대를 위협하는 극단주의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공화당원의 대다수가 MAGA 집단에 속하거나 그들의 극단적인 이념을 수용한 것은 아니다”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화당이 도널드 트럼프와 MAGA 당원들에 의해 장악되고, 움직이고, 위협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애써 ‘말 비틀기’를 시도한다. MAGA 지지자들 가운데 공화당원은 다수에 못 미친다는 바이든의 발언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을 만큼 물을 흐려놓는다. 조 바이든에게 MAGA 공화당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 금요일, 바이든은 “트럼프 지지자를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며 앞에서 흘린 자신의 발언을 조금 더 주워 담았다. 거기서 그는 “폭력을 선동하고, 고무하며, 선거결과에 불복하고, 투표와 개표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며 공격의 표적을 구체화했다.

이젠 분명히 말하자. 공화당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바이든이 애써 덮어주려 했던 바로 그 잘못을 저질렀다. 공공종교연구소가 11월에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들의 1/3이 “폭력에 의존해서라도 수렁에 빠진 이 나라를 건져야 한다.”는 견해에 동의했다. 그 뒤에 나온 여론조사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1/4이 인터넷에 나도는 허황한 큐애넌 음모론의 신봉자임을 보여준다. 큐애넌의 음모론은 쓴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조만간 폭풍이 일어나 권력을 쥔 엘리트들을 쓸어갈 것이고, 올바른 지도자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든지, “사탄을 숭배하는 아동 성착쥐자들이 글로벌한 아동 인신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식이다.

지난 6월 폴리티팩트는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공화당원의 약 70%가 바이든을 적법한 대통령이 아니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다. 선거 및 각종 통계 분석 전문 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예비선거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지난 대선 선거결과를 부정하는 120여명의 후보들이 공화당의 지명을 확보해 11월의 중간선거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공화당은 민주당 인사들의 말꼬리를 잡아 힘을 빼는 재간을 갖고 있다. 버락 오바마도 공화당의 동일한 전략으로 골탕을 먹었다. 당시 오바마는 총기규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일부 성난 미국인들은 총기나 종교에 집착하거나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반감, 혹은 반이민, 반무역 정서를 통해 그들의 분노를 표출한다”고 말했다가 공화당의 역공에 걸려들었다. 오바마의 말은 전적으로 옳았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힐러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지지자들 가운데 절반은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동성애혐오주의자, 외국인혐오주의와 이슬람혐오주의자로 ‘내가 개탄스러운 사람들의 바구니’라 부르는 곳에 집어넣어 마땅한 자들이다. 트럼프는 이런 사람들을 띄워준다”는 발언을 공화당은 그녀를 잡을 부메랑으로 활용했다. 클린턴의 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개탄스러운 공화당원들의 수치를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

일부 유권자들이 미국에 떠안긴 위험을 알리는 것이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분열적이고, 모멸적이며 불공정한 공격이라는 공화당의 주장에 더 이상 휘둘려서는 안 된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열혈 지지자들 가운데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당하지 않아야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바이든은 공화당원들에게 사과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국가에 사과해야한다.

1994년 NYT에 그래픽 에디터로 입사하여 2008년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로 승진했다. TV 해설자이며 정치, 사회정의, 저소득층 커뮤니티에 관해 글을 쓰고 있다.

<찰스 M. 블로우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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