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고 한 많은 분들이 어디 한두 사람일까만 이 분들에겐 죽는다는 말 자체도 사치라고까지 여긴다고 한다.
얼마 전 고국에선 셋방 사글세를 내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집주인에게 유언 대신 세 모녀가 목숨을 끊은 끔찍한 소식이 전해왔다. 엄마의 병고와 두 딸의 불치병에 그 원수 같은 필연적, 숙명적 가난이 원인임은 물론이나 사회적 소외, 무력함이 그 밑바닥 근원임을 금방 알 수 있겠다. 그런 와중에 무연고 장례를 공무원들을 비롯해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쓸쓸하지만 성의껏 치렀다는 소식에 한결 마음이 조금이나마 훈훈해졌음을 전한다.
1주일 전쯤 딸이 어디서 들었는지 한국영화를 보러가자고 성화라 저녁을 먹고 동네 극장 AMC에 거의 몇 년 만인지 모르겠으나 오랜만에 나들이했다. 우선 필수(?)로 큼직한 옥수수튀김(Popcorn)과 마실 것을 입구에서 산 후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동양인, 서양인들이 엇비슷한 숫자로 상당한 수가 이미 입장해 있어서 약간은 놀랐다. 이 영화에 관심이 꽤 있는 모양이다.
차차 영화가 진행되니 내용이 짐작이 되었다. 내가 동부에 살던 1970-80년대에 서부에서 한국인 청년의 억울한 옥살이에 많은 우리 동포들이 구명운동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중 주요 등장인물 중 시민운동가인 그레이스 김 여사는 내가 서부로 이사 후 얼마 안 되어 남가주 태평양 연안의 Seal Beach 은퇴마을의 어느 모임에서 인사를 나눴던 분이라 기록영화 ‘free Cheol Soo Lee’(이철수석방)을 뜻 깊게, 그것도 가족 모두가 함께 볼 수 있었다.
불행한 어린 시절, 친부는 얼굴조차 모르고 친모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 출산으로 인해 친부에 대한 증오와 원망을 어린 자식에게 퍼붓는 식의 학대를 하니 어린아이의 정서적 상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래도 자식을 위해 미군과 결혼 후 미국으로 이주해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자리 잡는다.
어느 날 차이나타운 살인사건과 함께 이철수 군의 악몽의 미국생활 시작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동양인이면 분간할 수 없는 거의 똑같은 사람들로 착각하는 서양인들,
또한 남의 일이니 알지도 못하고 대강대강 인상착의로 거짓증언과 아주 못돼먹은 엉터리 미국 사법제도의 결과로 철수 군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감옥생활을 거의 10년을 한다. 뜻있는 사회 시민운동가들과 인종과 세대를 초월한 모든 이들의 줄기찬 노력과 열화 같은 성원으로 무죄석방은 되지만.
국가로부터의 공식적 사과나 별다른 보상은커녕, 은연중 사회적 냉대로 인해 사회로의 재진입 실패와 적응 곤란으로 주위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손을 댄다. 결국 재활실패로 한 젊은이는 한번뿐인 삶이 어처구니 없이 망쳐져 저 세상 사람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생전 이 젊은이의 말 한마디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데, “나는 비록 희생자이지만 나로 인한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모든 이들, 특히 소수민족 이민사회에 큰 교훈이 되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멸시, 냉대, 편견에 대항하는 소수민족 이민사회는 해답이‘오직 단결’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유대인들은 상권과 권력지향적, 영국 연방에서 제일 못살던 아이리쉬계 이민자들은 공직에 웅지를 틀고 2세, 3세들의 생활안정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끊임없이 확인하고 받쳐주고 있는 현실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비록 연로하나 시민운동가인 그레이스 김 같은 분이 존경스런 이유이기도 하다. 더 많은 유능한 젊은이들이 정계에 진출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잘못을 저지르면 응당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음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자신의 잘못은 티끌만치도 없음에도 난치병, 불치병을 갖고 이 세상에 나옴으로 정신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 빈곤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순전히 거짓증언이나 무고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고 내지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 경우가 너무도 빈번하다.
이런 경우들은 인간능력의 한계, 인간이기에 실수, 인간사회 어디서나 늘 있을 수 있는 일들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심각한 사태임으로 모두가 합심 노력하여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을 뻗어야 함은 삼척동자도 알지만 실천하는 우리들이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외치는 “공정과 상식의 사회”로의 첩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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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