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그리움에게

2022-09-09 (금)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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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리웠어!”

피아노 앞에 앉아 오른손 왼손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래, 우리 함께 해보자!” 아주 오랜만에 피아노를 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내가 피아노를 처음 배운 것은 결혼생활 3년째, 작은아들이 백일 되던 무렵이었다. 이십대 초반 나이에 철없이 결혼을 했고 계획도 없이 두 아들의 엄마가 되어 고군분투했던 1985년 9월 초가을, “아내”도 낯설고 “며느리”도 멋쩍고 더구나 “엄마”는 내것이 아닌 듯이 그저 하루하루가 우왕좌왕 동분서주, 그야말로 죽기 살기 필살기의 삶을 살았었다. 아니 헤쳐 나갔다고 해야 할까?


둘째 아들 백일 잔칫날 두 아들의 엄마됨 “축하?” 선물로 받은 피아노, 막 백일 된 둘째 아들을 업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바이엘 체르니 소곡집… 시간이 갈수록 나의 피아노 연주는 점점 부드러운 멜로디가 되고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다. “애송이 엄마!” 어설프지만 피아노 덕분에 행복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백일 갓 넘었던 작은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청각장애가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자영이 엄마의 간곡한 부탁으로 난생처음 나는 피아노 선생님이 되었다.

자영이와 나는 입모양(구화)으로 의사 소통을 하며 피아노를 가르치고 쳤다. 참 신기하게도 자영이는 잘도 따라와 주었다. ‘혹시, 쟤가 조금 들리나?’ 가끔은 의문이 들 정도로 잘했다. 자영이와 내가 3년이 넘게 함께 했는데 어느 날 자영이네가 이민을 가면서 우린 헤어졌다. 자영이 덕분에 나는 한동안 동네 아이들의 피아노 선생님으로 살았다. 늘 웃는 엄마, 늘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으로 힘들었던 애송이 엄마는 씩씩하고 싱그러운 중년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아! 오랜만에 파아란 9월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옛날 날 감동시켰던 그림같은 새털구름이 여전히 멋지고 아름답게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내 나이 60을 넘었고 2022년도 반을 넘어 어느새 9월이다.

지금 내 몸은 스트로크(stroke)로 불편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 박자가 조금 엇나가고 노래가 조금 어설프면 어떠한가 내가 피아노를 친다. 스트로크로 50% 이상 불편해진 오른손과 한달 전 넘어지며 팔목이 금이 가 아직은 성치않은 왼손으로 “고향의 봄”을 치며 내 젊은 이십대 시절 내 마음의 고향을 노래해 본다. 아장아장 초보엄마 어설픈 이십대 모습이 새털구름 너머에 빙그레 웃고 있다.

“나는 지금 또 먼훗날 그리움으로 다가올 추억을 만들고 싶다.” 철없던 엄마지만 피아노와 함께 잘 자라준 두 아들에게 감사하며 조금은 농익었을 오늘의 나를 믿으며 먼훗날 아주 먼훗날의 그리움을 위하여 “도전!”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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