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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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달빛 아래서 화분에 담긴 마음을 읽는다

2022-09-07 (수) 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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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가드닝만으로도 바쁜 나는 실내 화분은 많이 두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한 세월은 길다. 우선 부엌 창 앞에 둔 아프리칸 바이올렛은 12년째 키우고 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번식도 열심히 해서, 새 화분을 15개까지 만들기도 했었다. 잎 한 장을 얻어 키운 고무나무도 올해로 10년이 되었고, 봄에 그것에서 다시 잎을 한 장 떼어 삽목에 성공했다. 가장 오래된 화분으로는 산세베리아와 벤쟈민이 있는데 거의 20년째 키우고 있다. 특히나 두 화분은 캘리포니아에 처음 왔을 때 양가 부모님께서 우리 가정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사 주신 화분들이다. 이젠 너무 오래전 일이라, 사 주신 부모님들은 오히려 그 화분이 본인들의 선물이었던 것조차 어렴풋하시다지만, 나에겐 소중한 화분이다.
다행히 잘 자랐다. 이 년에 한 번은 분갈이도 꼭 해주고, 가구 배치를 바꿀지언정 이 두 화분이 필요로 하는 햇빛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사 때도 그 무엇보다도 조심해 옮겨왔다. 그랬는데도 나름 스트레스가 컸는지 이사 후 잠시 성장이 주춤하기도 했지만 다시 잘 자랐다. 식물이 성장하는 만큼 화분도 커졌고, 어느새 혼자서는 분갈이도 쉽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화분 사이즈를 키우는 건 방법이 아니지 싶었다. 그래서 이 년 전, 과감히 가지치기하고, 포기 나누기해서 작은 화분에 옮겼다. 그런데 벤자민은 잎이 자꾸 말라 떨어지고, 그 번식 쉽다는 산세베리아도 새 눈을 올리지 않았다. 거의 일 년이 지나서야 안정을 찾았고, 나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물로 화분을 택하곤 한다. 그중엔 돈처럼 생긴 잎 때문에 부를 상징해 돈나무라고도 불리는 금전수, 두고 키우면 행운을 준다는 행운목, 탁월한 공기 정화 능력의 파키라 등이 듣기 좋고, 믿고 싶은 의미 때문인지 선물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금전수가, 행운목이 정말 돈을 벌게 해 주거나 행운을 가져다주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이 식물들 모두 재배가 까다롭지 않고, 햇빛과 물이 많이 필요치 않아서 실내 화분으로 좋고, 생존력도 뛰어나 선물로 오랫동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 게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적어도 화분을 골라 선물하는 그때만큼은 모두들 상대방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했을 것임을 믿는다. 마치 20년 전 양가 부모님이 비슷비슷한 화분 속에서 가장 건강하고, 이쁜 화분을 고르며 자식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만 한다면 선물 받은 모든 화분엔 행운이 있다.

곧 한가위다. 아직 달은 꽉 차지 않았지만, 오늘 밤 달빛 아래 화분은 부모님의 마음처럼 유난히 크고, 따뜻하다.

<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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