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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와 플라자 합의

2022-09-07 (수)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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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지난달 중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했을 때도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떠올랐다. 당시 미국 정부는 막대한 대일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유럽 열강들과 협력해 엔화 가치 절상을 유도했다. 결과적으로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던 미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등에 업고 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국가 경제는 회복세를 보였다. 반면 일본의 경우 단기간 급등한 엔화 가치를 통제하려다 버블이 붕괴해 모두가 아는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하게 된다. 글로벌 경제가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IRA도 다르지 않다. 미국 입장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역시 중국이다. 자국 자동차 회사들을 중심으로 모빌리티의 미래인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중국 업체들은 물론 중국산 제품과 관계돼 있는 다른 나라 회사들 역시 모두 타겟으로 한 것이다. IRA를 통해 생산공장을 미국 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전기차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열렸을 때 넓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판매량을 늘리면 글로벌 시장도 따라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몰락한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을 다시 부흥시킬 수도 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 입장에서 노동조합이 살아 있는 자동차 업계의 회복은 표밭 확보, 정치력 신장에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이번에도 한국이 ‘끼여 있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중국 없이 전기자동차를 만들지 못한다. 니로EV처럼 중국산 배터리가 통으로 장착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각종 원재료에서 중국산 사용은 필연적이다. 거칠게 말하면 중국에 이익이 되는 전기차를 미국 시장에 판매해 돈을 버는 현대차·기아는 미국 정부에 찍힐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까지 나서서 대대적인 대미 투자를 약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100억 달러를 써서 조지아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돌아온 것은 IRA였다. 연방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제외는 현대차·기아 미국 판매에 큰 악재가 될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시각도 있다. 미국이 한국 자동차 브랜드들을 직접 노리고 IRA 셈법을 계산했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는 기대 이상이었다. 점유율 2위(약 9%)로 테슬라 다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드와 GM 등 전통적인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정부에 로비를 해서 한국 브랜드를 저격하는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실제 IRA 통과로 현대차·기아는 미국에 판매하는 친환경차 전차종 19개 모두 보조금을 못 받게 됐다. 독일과 일본 브랜드 일부 모델들은 보조금 수혜 대상인데 말이다. 표면적으로 중국 배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한국 배제’가 진짜 목적이었을 수 있다.

자동차 뿐만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최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칩4’ 동맹은 또 다른 경제 패권주의로 보인다. 한국, 일본, 대만과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를 만들자는 것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잘못해 어느 한쪽에 베팅을 했다가 차질을 빚게 되면 수출 주도 경제인 한국은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몰락한 일본 경제가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이 중국과 함께 한국을 견제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삼성전자는 물론이다. 현대차·기아가 만든 아이오닉5와 EV6는 그 가격대에 만들 수 있는 전기차인가 싶을 정도로 탁월하다는 게 세계 시장의 평가다. 역설적으로 자동차를 너무 잘 만들어서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견제 대상이 된 것인데 우리는 이 상황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당장 IRA를 뒤집기는 힘든 만큼 마진을 줄여서라도 초기 단계인 전기차 시장에서 파이를 키워야 한다.

한국 정부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미국이 뻔히 예상되는 한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IRA를 통과시킨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전 정부의 중국 외교를 비판하면서 집권 초기부터 친미주의를 표방한 윤석열 정부의 태도가 우려스럽다.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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