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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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나에게는 아들엄마가 있다

2022-09-02 (금)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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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엄마!” 이름만으로 눈물이 ‘왈칵!’

나의 작은 아들에겐 딸이 셋 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아들에게 딸이 셋이라니? 큰딸 엄마(나), 둘째딸 2살 아지(개), 셋째딸 1살 하늘(강아지), 딸 셋! 먹이고 입히고 보험 들어주고 때맞춰 병원 데려가주고 장난감 사주고 똥 치우고 오줌 치워주고 놀아주고 바쁘다.

아들엄마는 37년 전 첫째딸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 아들 30세 생일 일주일 전, 아들은 아들엄마가 되었다. ICU 중환자실! 그곳에서 처음 아들은 돌연 엄마가 되었다. 빡빡 깎은 머리, 여기저기 꽂혀 있는 주사바늘들, 주렁주렁 늘어져 있는 링거병들, 이름 모를 기계들의 쉼 없는 움직임들, 입에 씌워진 산소 마스크가 살아 있음을 알려줄 뿐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다리고 기다리며 ‘엄마, 살아만 주세요’ 빌고 또 빌고.


뇌출혈 수술 후 혼수 상태 다섯째 날, 기적같이 엄마가 깨어났다. 까까머리에 대소변도 못가리고 정신도 혼미해서 겨우 자신의 이름 정도 기억할 뿐이었고 설상가상 수술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되는 반신불수가 된 엄마, 아들엄마와 첫째딸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병원 생활 두달만에 퇴원한 엄마는 드디어 아들엄마의 보호 속에 첫째딸로 태어났다. 옷 벗고 입기부터 왼손으로 먹고 쓰기 스스로 서고 걷기, 아들엄마는 먹이고 입히며 때로는 업고 함께 넘어지며 오직 딸 재활을 위해 밤낮으로 열심이다. 더 기막힌 것은 첫째딸이 쓸데없는 옹고집을 부리며 밉상을 부려도, 철없는 투정을 해대도 아들엄마는 그저 곱게 봐주고 다독이며 지극정성을 다하는 데 있다.

아들엄마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른 아침 직장 가기 전에 아픈 딸내미 하루 동안 먹을 약이며 그날 할일을 일일이 적어 딸내미 머리맡에 놓아주며 늘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안부를 살피고는 출근길에 오른다. 퇴근길엔 둘째 셋째딸 간식이며 장난감을 사오기도 하고 전화로 오늘 집에 필요한 것들은 없는지 물어가며 세 딸들의 뒷바라지에 변함없이 열심이다.

특히 내가 아들엄마에게 제일 미안한 것은 날마다 해주는 마사지이다. 7년을 한결같이 저녁 잠자리 들기 전 한두시간씩 아들엄마는 낮에 있었던 직장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며 아픈 딸의 하루도 묻고 들으며 아픈 딸 팔다리를 주무른다.

아들엄마는 이 풍요로운 9월 같이 한없는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무한 햇살인데 우리 세 딸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도 아들엄마는 하루 일과 마무리로 첫째딸 마사지를 한다. 덩달아 둘째 셋째딸이 아들엄마 사랑 쟁탈전으로 온몸을 아들엄마에게 비빈다. 아들엄마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 “아! 나의 제일 행복한 시간!” 그래도 “아들엄마! 내년에는 아들로 거듭나길…”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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