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나이가 든다는 것

2022-09-01 (목)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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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위에 존재하는 것들이 그 자리에 영원히 원상태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길 위에도 풍화작용이 있어 살다가 보면 쪼개지고, 닳아 없어지고, 작아지고, 삐뚤어지고, 금이 가고, 뒤집어지고, 나누어지고, 엎어지고, 꼬이고, 산산조각이 나고, 끊어지고, 나이테가 점점 커지기도 한다. 우리의 삶이란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도 알게 되는, 그래서 희로애락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청춘의 나이로 서로 처음 만났을 땐 그 누구나 기쁨으로 만나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살다가 나이가 좀 들고 삶에 대한 염증이 생겼을 때 분노하기도 하며, 어느 날 갑자기 슬픔을 맞이할 때도 더러 있지만, 한없이 많은 축복을 받아 온통 기쁜 나날 속에 서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각자 삶의 모양은 다 다를지라도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단 한 가지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마음으로는 아름답게 살고 싶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사람들도 코브라 뱀처럼 독을 품고 살 때가 간혹 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쩔 수 없이 독기를 뿜어낼 때가 있다. 좋아했던 것만이 삶의 향기라 하지 않을 것이다. 즐거움도 고통도 아픔도 모두 우리의 삶에 언저리 한 부분에 묻어 있는 인생의 향기다.


평소보다 귀 울림이 더 심해져 병원에 갔다. 의사는 내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고 암 가능성을 암시했다. 난 그날 이후 나의 뇌 속에 암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레짐작을 해 버렸다. 이제는 무엇이나 순순히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있어 무서움조차 느끼지 않았다. 예전엔 무엇이든 놓지 않으려 악착같이 움켜쥐고 있던 것을 지금은 놓을 줄도 아는 여유가 생겨서다. 다행히도 MRI 사진 속에는 암이 자라고 있지 않았다.

푸르름과 싱그러운 젊음을 가졌을 땐 청춘이라는 이름 하나에 기대 세상 위 만물이 모두 내 것인 양 의기양양했던 마음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의 발자국 소리가 점차 작아지고 초라한 몰골을 한 나그네가 길을 터벅터벅 걸어 정처없이 홀로 떠나가는 듯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이 매일 보아왔던 기억은 있는데, 무심코 다시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의심하듯 비비고 다시 보니 인생의 길을 종종걸음으로 끊임없이 걸어 이즈음에 와 있다는 걸 이제야 자각을 한다.

인생의 핸들을 잡고 있는 우리는 속도를 내지 않으려 애써 보지만 젊은이들의 운전 습관처럼 점점 빠른 속도로 줄달음질을 치듯 빨리 달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절대 줄일 수 없는 속도를 내며, 그래도 아직 마음만은 한껏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가고 싶은데….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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