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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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서 스쿠터를 도난당했어요

2022-08-28 (일)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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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딸이 애플에서 새로 나온 신형 헤드폰을 둘러보기 위해 연방의사당 근처에 있는 애플사에 갔다. 정문 앞에 자전거와 스쿠터를 보관하는 장소에 자신의 스쿠터를 튼튼한 잠금장치로 걸어 놓고서 말이다. 30분 정도 구경을 하고 나왔는데 그렇게 튼튼하게 잠가놓은 커다란 스쿠터가 온데간데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냥 정차해 놓은 것도 아니고 쇠줄로 락을 걸어놓았기 때문에 그냥 분실될 일은 아니고 절단기 같은 것으로 단시간에 절단하고 가져갔을 공산이 크다. 한적한 곳도 아니고 사람들의 통행이 잦고 도심에 있어서 설마 이런 곳에서 도난을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라 너무도 당황스러웠단다. 더구나 도심 한복판에 근사한 단독 건물로 그래도 가장 번쩍이는 세계 제1의 애플 샵이 아니었던가?

도난 후의 대처는 더욱 어이없다. 애플에서는 영업시간이 끝났으니 도와줄 수 없고 알아서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고 경찰은 바빠서 조사할 수 없으니 기다리라고 말하고 4시간을 기다렸지만 끝내 경찰을 만나지 못했다. 도난을 당했으면 당연히 경찰이 해결해 주어야 하는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일이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의 치안은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범죄 검거율이나 살기 좋은 나라의 순위 등 딱 부러지게 치안만을 위한 순위가 나온다는 건 기준이나 그 방향성이 달라 한마디로 정의해서 순위를 매기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치안 즉 한밤중에 밤거리를 아무런 걱정 없이 특히 여자가 걸어 다닐 수 있는 나라가 한국 이외에 한 두어 나라 정도 있다는 정보를 통해 한국이 얼마나 안전한 나라인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길거리에 돈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서는 안 된다고 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습득해 본인이 소유하거나 타인에게 주었을 때 ‘점유이탈물 횡령죄'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고 만약 습득한 재물을 사용하였을 경우 절도죄가 성립되어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연히 주운 돈을 줍는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인지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오랫동안 지갑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손을 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같은 선진국이고 미국의 매너는 한국이 따라야 할 좋은 점이라고들 하는데 왜 이렇게 사회적, 개인 간의 신뢰가 다를까? 한국은 집단주의적 사고의 일종으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평균적인 교육이 다른 나라에 비해 우월하다. 이는 어릴 때부터 교육열이 부추겨준 학습효과가 크게 작용하는데 너도나도 교육만이 경쟁에서 살길이라는 치열한 경쟁의식에서 나온 효과라고 본다. 청소인력의 지원자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인재라는 것이 좋은 예이다.

하지만 미국은 상위 5% 정도만이 이 사회를 이끌고 간다고 봐야 한다. 잘하는 사람을 열심히 키우고 잘하지 못하는 나머지 사람은 그냥 따라가는 사람으로 만족한다. 그래서인지 95%는 자기의 일만 매뉴얼대로 충실하게 따르면 대중사회에 귀속된다는 믿음이 있다. 즉 남의 지위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처음부터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과열 현상이 한국처럼 과하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로 남의 눈은 중요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한국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폐해도 많지만 이런 경우엔 좋은 방향으로 적용되었다고 본다. 남의 이목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쁜 일을 했을 경우 결과물에 관한 일 또한 나뿐 아니라 가족까지 연결되어 확대된 이미지까지를 생각하는 문화다. 먼 친척의 딸이 서울대를 가면 나 또한 그 집안의 일원으로 나의 레벨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의 가정은 그렇지 않다. 내 아이가 하버드를 가도 아이의 인생이지 나의 인생 전반의 성공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기에 나의 일이 가족 전체로 확대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애플 직원도 경찰도 주인의식이 없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나의 일이 아니면 절대 관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나에게 주어진 일에만, 할 수 있는 일까지만 하면 만족한다는 한마디로 나 중심적 사고가 팽배하다. 그러기에 집단으로 움직여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매뉴얼을 일사불란하게 보고 배우는 일에 모두가 충실히 따라야 낙오자가 되지 않는 한국은 모든 게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 가는데 미국은 스스로 나에게 만족하면 그뿐 꼭 다 같이 함께해야 한다는 의식이 없어 제도적으로 일사불란하게 변화하는 데에 따르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화이트칼라만 다닐 거 같은 워싱턴 DC 근처의 도난이나 범죄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아시안으로 이민자의 딸로 대망의 미국 의회로 출근한다고 좋아했던 내 머리에 스쿠터의 분실로 꼬마전구가 순간 꺼져버린 사건이었다. 아시안 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는 뉴욕으로 가겠다는 딸을 뜯어말리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들면서 더 큰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나저나 스쿠터를 또 사야 하는 거야?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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