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죽어봐야, 맛을 알지!”

2022-08-26 (금)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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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죽어 봤나요?”

정말이지 웃기는 질문이 아닌가? 그러는 나는 죽어 봤을까?

어제는 드디어 MRI 영상 촬영을 하는 날이었다. 코로나19로 모든 일상이 거의 마비되었던 탓에 3개월이나 기다려 어제 겨우 촬영할 수 있었다. 예약 시간이 늦은 오후 시간이였는데도 왠지 이른 아침부터 마음이 부산했다. “뭐, 좋은 일이라고?!” 어쩌면 내 머릿속 이상 유무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겠거니와 MRI 검사를 위해 그 좁디 좁은 통 속에서의 이상한 경험을 또다시 해야 한다는 야릇한 기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검사 시간은 대략 40분 정도, 패쇄 공포증 여부를 묻고는 장신구나 액세서리를 모두 빼야 한다며 알몸에 가운 하나만 입으라 했다. 액세서리라야 겨우 결혼반지 하나! 빼고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는데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무척 애처로워 보이면서 평소의 나답지 않아 낯설게까지 느껴졌다. ‘사는 게 뭐라고?’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드디어 영상 촬영실 매트에 눕는다. “움직이지 마!”라는 말에 내 숨소리마저 쥐 죽은 듯이 잠잠해지고 그나마 한손에 쥐어준 비상 버튼을 위로 삼으며 촬영은 시작되었다. 눈 가리고 귀 막고 몸둥이 하나 꽉 들어찬 좁디 좁은 공간에 덩그러니 나 혼자다. 커다란 통 속으로 서서히 내 몸은 빨려들어가고 난 가슴으로 성호를 긋는다. “하나님, 절 용서하소서!”

어느새 삶을 위해 찍는 MRI 검사 중에 어쩜 난 이미 죽은 자가 되어 있었다. 그저 운명에 맡길 수밖에… “탕! 탕! 탕!, 우르르 쾅!” 심장을 두드리는 기계 소리와 함께 검사는 시작되고 그 소리에 놀란 내 가슴에는 어느새 내 아픈 과거가 점점 까발려지고 있었다. ‘아! 가슴 가득 차 있는 저 부질없는 욕심들’ 부끄러웠다. 육신의 아픔보다 더 처절하게 멍들어 있는 슬픈 과거들이 쏟아지고 또 쏟아져 나왔다. 미워했고 증오했고 아파했던 시간들, 좋아했고 사랑했고 행복했던 추억들, 울었다 웃었다 모두가 “나!”였다.

“삐~삐~삐~” 어느덧 빗발치던 굉음도 잠잠해지고 검사는 끝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삶의 여유보다는 일상에 급급하여 바쁘게만 살아왔었다. 왜? 조금 더 너그럽고 조금 더 풍요로운 마음을 갖지 못했을까? 가끔은 쉬어도 가고 뒤도 돌아다보는 조금은 다른 내가 되어야겠다.

누군가 그랬다. “죽어봐야, 맛을 알지!”라고.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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