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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벼랑 위에 핀 고고한 조선화

2022-08-25 (목) 문범강 /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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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화 칼럼 (마지막회)

르네상스 미술 이후 서양 미술사는 변천의 연속이었다. 각 해당 시기의 미술 흐름 및 문화 정체성을 부정, 회의(懷疑),조롱함으로써 새로운 미술 운동을 일으켜 온 것이 근, 현대 미술사의 현상이다. 때론, 팝아트와 같이 문화에 대한 반응, 재해석으로 생긴 미술 움직임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각, 세계 미술 시장은 지난 시기 생겼던 여러 미술 흐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고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 새로운 미술 형태와 융합 내지는 혼재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널리 퍼진 개념 미술, 미디어 아트, 설치 미술 등과 공존하는 다양한 형태의 각축장이 현대 미술의 현주소다. 현대 미술의 다양화는 다루는 재료뿐 아니라 개념의 은폐성에 있어서도 두드러진다. 작품이 지닌 지나친 개념화 때문에 관람객의 용이한 접근을 막고 있는 현상이 현대 미술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어느 시기든 표현의 자유의지는 예술의 생명이다. 예술의 생명을 틀어쥐고 숨통을 막은 시기가 유럽의 중세였다. 교회의 도그마가 휘두른 종교 권위의 미명 아래 예술은 신음하며 자유를 상실해버린 기간이었다. 이 시기를 예술의 암흑기라 부르기도 한다. 그 시기가 무려 천 년이나 되었다.

현대미술의 시각으로 바라본 유럽 중세 미술은 분명 종교 프로파간다 미술이다. 종교 외엔 주제의 다양성은 찾아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중세 미술을 교회의 프로파간다 미술이라고 공공연히 비판하며 나서는 학자는 없다. 또한 중세의 작가를 예술 정신이 전무한 작가라고 폄하하지도 않고 있다.
예술의 다양한 주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힘이 바로 지금도 많은 인구가 신봉하는 기독교였다는 아이러니에 도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런 작품을 양산하게 만든 당시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를 형성하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미술사학과가 있는 거의 모든 대학은 중세 미술을 연구하고 강의하며 박사 학위자를 배출하고 있다.


중세 미술이 교회의 프로파간다였다면 북한의 미술은 이념의 프로파간다다. 중세의 미술을 연구하는 학자와 연구자들은 중세 사회의 전반적 양태를 동시에 연구하며 그 사회가 지닌 문화와 미술의 표현에 대해 연결고리를 찾아 작품에 나타난 여러 종교적 아이콘의 비밀을 풀어나가기도 한다.
해당 사회를 알지 못하면 미술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음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종교의 프로파간다 미술일지라도. 마찬가지로 북한의 미술 역시 북한 사회를 연구하고, 북한 미술이 지니고 있는 내용 및 표현과 연관성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동양화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조선화의 독특한 발전상도 북한의 문화, 정치, 역사와 함께 학문적으로 연구할 때 비로소 진가가 드러날 수 있다. 지난 6년간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북한 미술 연구를 위해 평양을 들락거렸던 나의 열정은 다행히도 어느 정도 만족한 성과를 얻게 되었다.

세계 최초의 조선화 연구서인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를 한국어(2018), 영어(2019), 일어(2021)로 출판했고 북한 미술이 아직도 북한 사회에 만연한 유교사상의 면면한 내적 가치의 발로가 은은하게 드러나고 있다라는 연구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의 방문도 차단된 평양이기에 새로운 연구의 진전은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념의 벼랑 위에 고고히 핀 조선화, 그 진하고 매혹적인 미학의 향기를 과연 세계는 맡을 수 있을까. 북한 사회의 폐쇄성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끝>

<문범강 /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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