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원래 좌우 이념의 차이로 이도저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참으로 안타깝게도 불쌍한 재능 있는 지식인들을 한 때 일컫던 적이 있는 줄로 안다. 대표적인 예가 오래전 동백림 사건 때 연루의혹의 윤이상 씨가 아닌가 한다.
자조 섞인 단어, 경계인! 이는 분명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분명히 이 세상의 일이다.
이보다 더 불행할 뿐만 아니라 생각할수록 오싹해지는 사실이 있다. 요즈음 이야기하다 보면 남편이, 부인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심지어는 형제, 자매가 어느 집안이나 알츠하이머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있음을 목격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하나같이 많은 분들이 명석했었다는 이야기이다.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분, 어렵다는 물리, 공학계통의 석학들,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가족들은 그런 이야기를 별로 하려 않지만 그들을 진료하거나 치료하는 의사들, 특히 신경내과 의사들의 말이다. 이 분들은 한마디로 이 세상 분들이라고 부르기도, 그렇다고 생명이 있으니 저 세상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는 더욱 아니 올씨오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 저 세상에도 진정 속하지 않는 경계인들이 아닌가 한다.
지난 주일에 한 교우가 90대 중반의 남편을 소개했다. 이미 이 병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의외로 외관상으로는 노인장일 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전혀 두뇌활동(인지활동)이 전무하다는 부인의 말이다. 비교적 얌전한 무 두뇌 활동 소유자인 셈이다.
일류고교를 수석입학, 수석졸업에, 일류대학 졸업에, 모교에서 오랫동안 교수생활에, 수많은 저서를 내었던들 이제와 그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태어날 때도, 떠나갈 때도 ‘인간은 평준화’로 시작과 끝이 동일하다고 함이 수긍이 간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나 세세한 이야기는 안하려 한다.
알츠하이머병과는 좀 다른 이야기이나, 몇 년 전 임종이 가까운 교우 분 병문안을 갔을 때이다. 그 옛날 활발, 명량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혼이 거의 다 빠져나간 분으로 여겨졌다.
무슨 이야기 중에 그분 따님이 “우리 아버지 아직 이 세상분이시야요!”(아직 안 죽었다는!) 안타까운 절규를 하며 현실을 절대적으로 부인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죽했으면 아버지와의 사이별을 부정하려 했을까.
아마 이때가 그 교우가 이승과 저승의 바로 그 건널목에 다달았을 때가 아닌가 한다. 이들 두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 누구나 한 번은 이 경계선을 넘을 것이다.
누구나 영원한 경계인으로 남을 수는 없고 어느 한 곳에 정착함으로 안식을 갖게 됨이 오묘한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아니 그렇소이까?
<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