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넘긴 새벽시간. 조용했던 한 편의점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오더니 눈 깜짝할 새에 진열대에 놓인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는다. 이들은 물건을 던지거나 편의점 기물을 부수는 난동을 부리며 편의점 내에 있던 얼마 되지 않는 손님들과 직원을 위협한다. 손님들과 직원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불과 몇 분 안에 편의점을 점령한 떼강도단은 경찰이 출동하기도 전에 제각각 거리 위로 흩어진다.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범죄 상황이다. 아니, 위와 같은 상황이 소설의 일부였다면 작가가 현실성이 없다고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에서 저런 일이 가능이나 한가, 작가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라는 독자들의 항의가 쏟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위의 정황은 픽션이 아닌 실제다.
지난 15일 오전 12시45분. 사우스 LA 하버 게이트웨이에 위치한 세븐일레븐 매장에 ‘스트릿 테이크오버’(Street Takeover) 불법행위를 하던 참가자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약탈, 기물 파손 등 난동을 부리는 사건(본보 19일자 1면 보도)이 발생했다. 경찰국은 18일 피해를 당한 세븐일레븐 매장의 보안 카메라에 찍힌 비디오 영상을 공개하고 용의자들을 절도, 약탈 및 기물 파손 등의 혐의로 공개 수배한다고 밝혔다.
남가주에서 떼강도 사건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LA시에서는 요즘 들어 부쩍 ‘스매쉬-앤-그랩’(smash-and-grab) 사건이 잦게 발생하고 있다. ‘스매쉬-앤-그랩’ 범죄란 강도들이 상점 유리문을 부수고 훔쳐가는 수법을 일컫는다. 지난 13일 오전 4시45분께 베벌리힐스 지역 윌셔 블러버드에 위치한 니먼마커스 백화점에 차량 한 대가 돌진해 정문을 부순 후 강도들이 침입해 물건을 훔쳐 도주했다.
앞서 지난 7월 중순에도 베벌리 그로브의 샤넬 매장이 똑같은 방식으로 떼강도를 당했다. 7월20일 오전 4시20분께 샤넬 매장에 흰 색 밴 차량 한 대가 돌진해 강도들이 가방, 지갑 등 매장 내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 LA시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꼽히는 베벌리힐스에서 ‘스매쉬-앤-그랩’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니,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날로 증폭되고 있다.
범죄들이 빈발하는 배경에는 여러가지 원인들이 산재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는 LA 카운티의 솜방망이 처벌이 꼽힌다. 약 1년 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LA 카운티의 한 현직 검사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해지면 더 많은 범죄가 발생하게 되고,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된다”며 조지 개스콘 LA 카운티 신임 검사장의 급진적인 사법 개혁 조치들을 강력하게 비판했었다.
개스콘 검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보석금 제도 폐지, 갱 단원 등 중범죄자들에 대한 가중처벌 기소 중단, 사형제 폐지, 범죄자 형량 재심사, 미성년자 범죄 시 성인과 동등한 처벌 금지 등 파격적인 검찰개혁을 추진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에 개스콘 검사장 리콜 운동이 두 번이나 추진됐지만 결국 이달 중순 두번째 리콜 운동도 유효 서명 부족에 실패로 돌아갔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익명 제보를 통해 본보 측에 “조지 개스콘 검사장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LA가 현재보다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으로 범죄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솜방망이 처벌은 강도, 폭행 범죄가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안전한 도시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기본적인 상식이 통해야 한다. 죄를 지어도 경찰에 잡히지 않고, 체포된다 해도 금세 풀려난다면, 경제가 어려운 시기일 수록 범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지금이라도 안전한 LA를 만들기 위해 검찰 당국이 앞장서야 한다. 지금은 ‘범죄도시 LA’라는 오명을 벗어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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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