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미물들의 수난

2022-08-18 (목)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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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현관문으로 들어오기 전 T자 통로 양쪽 그늘엔 공기정화에 탁월한 아이비 넝쿨숲이 우거져 있고, 햇볕 드는 양지엔 꽃나무들과 선인장들이 무성하다. 현관문을 열면 실바람을 타고 들어온 은은한 치자꽃나무 향기가 집 안에 감돈다.

그런데 그 현관문 통로에서 아들의 담배 피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달팽이들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 감각이 좀 무딘 아들의 신발 밑에서 달팽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된다. 바닥을 잘 쳐다보지 않고 셀룰러폰에만 눈길을 둔 아들의 무심함으로 인해 달팽이들의 수난이 이어졌다. 마치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찻길을 건너다 타이밍을 잘못 맞춰 차에 치이는 경우와 같다. 연체동물에 속한 달팽이는 어느 곤충보다 습기가 많아야 살아갈 수 있다. 습지를 찾아 이곳저곳 이동하는데 워낙 움직임이 느리다 보니 그만 사람 발밑에서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그렇게 많았던 달팽이들이 자취를 감췄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단 한 마리도 없다. 감쪽같이 다 사라졌다. 소수의 민달팽이들만 그늘 속이나 나무판자 밑에 숨어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그 이유는 너무 건조한 날씨 탓이다. 습기라곤 없는 지금 이곳 날씨는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태계에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앞뒤뜰에서 사람들 발밑에 밟힐 정도로 많았던 달팽이들이 몇 년 새 거짓말처럼 단 한 마리도 없다는 것은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렁이들도 수난을 피할 수 없다. 은신하며 살던 뜰 안 지하에서 목이 말라 용하게 탈출해 지상으로 기어 나오지만 사방이 너무 건조해 살아갈 곳을 못 찾고 헤매다가 몸의 수분을 다 잃은 채 개미의 먹잇감이 되는 지렁이들을 자주 보곤 한다.

자연과 가까이 하고, 자연을 관찰하며 살다 보니 외면할 수 없는 자연의 현상에 민감해진다. 해가 갈수록 수천종의 미물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으니 심각하다. 세상 위에 생명체들 중 천적도 있고,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공존을 위해 살아가는 것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호 균형이 깨지면 서로 위태로워진다. 2년 전만 해도 모기한테 물려서 무척 힘들었는데 이젠 모기도 사라졌다. 미물들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도 살기 힘들 것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위기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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