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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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사랑의 부메랑을 던지며

2022-08-12 (금)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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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랑합니다!”

아! 내 일생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인 줄 알았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니, 정말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상상할 수 없는 말이다. 사실 이 사랑 고백은 나 자신조차도 믿기지 않는 게 사실이다. 아마 우리 7남매가 이 글을 본다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게 뻔하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함을 넘어서 어쩜 증오까지 했는지 모른다. 특히 칠남매 누구보다도 격하게 아버지를 미워했던 내가 ‘사랑을 한다’니 머리 수술을 몇번 하더니 수술 후유증 정도로 치부할 지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는 이 세상 최고의 천사 엄마와 최악의 악동 아버지가 계셨다.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 칠남매 따듯이 감싸주시던 천사표 우리 엄마와 반면에 자그만한 배려도 전혀 없고 그 어떤 이해심도 없는 천하 독불장군이신 우리들의 악동아버지. 천사 울엄마는 긴 세월 기 한번 펴 보지 못하시고 언제나 악동 아버지 등살에 주눅들어 사셨다.


우리의 악동 아버지는 절대로 그 누구와도 겸상을 하지 않으셨다. 평생을 당신 혼자 식사를 하셨고 하물며 엄마께서 아버지 당신 음식을 요리하실 때에는 음식의 간조차 못보게 하셨다. 말도 물론 못하셨다. 침이 음식에 튄다는 이유 때문이였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거의 3년 동안은 아버지 식사 준비하실 때마다 마스크를 쓰셔야 했다. 악동 아버지 명령으로, 우리집에는 신발장도 아버지 것이 따로 있었다. 제일 높은 곳에 당신 신발만, 당신은 가장이니까. 엄마의 최고 고통은 삼시세끼 아버지 식사 준비였다. 평생 동안 아버지는 뚝배기밥을 고집하셨다. 어떤 날에는 뚝배기밥을 세번씩이나 다시 하셨다. 밥이 조금 되거나 질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모든 반찬이 두번은 상에 올라가지 않았다. 어떤 음식이든지 새것으로. 우리의 대단하신 악동 아버지!

우리들은 아버지 귀가 전에는 절대 잠을 자서는 안되었다. “감히 가장도 안오셨는데!” 하루는 자다 일어나 눈동자가 빨갛다고 밤새 두손 들고 벌을 서야 했다. 지금도 우리 칠남매의 최고의 찬사는 “꼭, 엄마 닮았네”이고 최고의 욕은 “꼭, 아버지 닮았네”이다.

오늘 따라 햇살이 곱다. 어느새 햇살은 부엌 깊숙이 들어와 기지개를 활짝 펴고 식탁 한가운데 놓여있는 뚝배기에는 갓 심어놓은 새끼 군자란이 고은 햇살에 새록새록 살을 찌우고 있다. 사실 어제 나는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의 뚝배기에 새끼 군자란을 심었다. 뚝배기는 얼마 전부터 바닥에 금이 가더니 물이 새기 시작했다. 내 엄마의 애틋함과 악동 아버지의 고독함이 가득한 뚝배기가 이제는 새끼 군자란을 보듬고 환골탈퇴한 모습을 보니 새삼 그리움이 몰려온다. 아버지의 심통까지도 애틋했다. “사랑은 부메랑이다”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아버지, 사랑합니다!”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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