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글로벌 경제의 화두는 역시 금리 인상이다. 거시경제 측면에서 보면 팬데믹 기간 풀린 막대한 돈 때문에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RB·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축 속도를 높이고 있다. 물가 상승은 그 자체로 경제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자산시장 폭락 등 금리 인상이 불러온 역효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중앙은행들의 행보를 지지하는 상황이다.
금리 인상은 개인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장 빚을 내는데 드는 비용이 비싸졌다. 모기지 금리 인상에 집을 사기도 힘들어졌고 신용카드 대출 등 각종 채무로 인한 지출이 커진 것이다. 불과 1~2년 전에 당시 상황을 보고 저금리가 장기간 이어질 것을 예상해 변동 이자율로 사업 자금 등을 빌린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문제는 금리 인상이 불러온 영향이 거대 자본에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연준이 4번 인상을 단행하면서 기준금리는 최대 2.25%로 올랐지만 대형 은행들의 예금 이자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모기지를 비롯한 대출 이자는 기준금리 인상 전에 이미 선반영해 채무자들에게 비용 부담을 늘린 것과는 반대되는 이중적인 행태다.
은행들이 낮은 예금 이자율을 유지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과거 같았으면 더 많은 대출로 이익을 내기 위해 자금 확보가 필수라 예금 이자를 같이 올렸을 텐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다수 고객들이 팬데믹 기간 지출을 줄이면서 그 돈을 그대로 은행 계좌에 넣어둔 경우가 많아 예금 잔액이 오히려 늘었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기업 이익을 높이는 쪽으로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일반 개인들이 본다. 긴축 여파에 자산 시장이 움츠러들었기 때문에 안전자산인 예금 수요는 높아진 상황이다. 그런데 피난처로 선택한 예금 이자율은 너무 낮아 역대급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로 봐야 한다. 다수 시민들은 돈을 어디에 둬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대형 은행들의 예금금리를 살펴보자. 연준의 기준 금리가 최고 2.25%인 상황에서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웰스파고 등 대형 주류 은행들의 예금 금리는 0.01%수준이다. 예대금리차가 이렇게 심한 경우는 역사상 매우 드물다. 이 결과 BOA 한 곳만해도 3분기에 이자 이익으로만 전분기 대비 10억 달러가 넘는 순익 증가가 예상된다.
한인 은행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남가주에 본점을 둔 6개 한인은행(뱅크오브호프, 한미은행, PCB뱅크, 오픈뱅크, CBB, US메트로은행)은 지난 2분기에 총 1억달러가 넘는 순익을 거두었다.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방한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한인 은행들은 그동안 기준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도 매우 낮은 CD 이자율을 유지해왔다. 한인들의 ‘아메리칸 드림’ 달성을 지원한다지만 이자 장사를 했다는 점에서 주류 은행들과 차이가 없는 행보다.
이러한 행태는 소탐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예금 계좌를 갖고 있는 한인들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IT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금리가 높은 핀테크 기업, 인터넷 은행 등으로 고객들이 빠져나가지 않지만 변화는 곧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당장 한인 은행들이 최근 새로 개척하려고 노력하는 주택 모기지 시장만 해도 선두업체인 웰스파고가 경계할 정도로 IT 기업들과 협업과 인터넷 은행들이 강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돈이 길을 잃은 상황에서 개인들도 투자 전략을 바꿔야 한다. 예금으로 방향을 선택했다면 기존에 계좌를 갖고 있는 은행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들을 적극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인 은행들이 자주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결국 개인의 근면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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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운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