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여성의창] 기뻐하기로 마음먹는 연습

2022-08-02 (화)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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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리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아침부터 쉴 틈 없이 몸은 움직이고 있는데 정작 나의 To-do 리스트에 밑줄 그은 것은 하나도 없고, 열심히 오물조물 씹고는 있는데 묘하게 음식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 그런 날 말이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드라이브를 하러 나섰는데 신호등이 계속해서 빨간 불로 바뀐다거나, 간신히 카페에 들어가 좋아하는 머핀 한 개와 커피 한 잔을 시키려고 보니 조금 전까지 분명히 있었던 “내” 마지막 머핀이 앞 손님에게로 가는 것을 목격하는 그런 날. 한여름에 갑자기 우박이 내리는 것처럼 당황스러운 그런 날이 있다. 적당히 서운해도 될 일들이 송곳이 되어 깊숙하게 나를 찌르고 내 모든 기운을 뺀다. 사실 나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숨도 못 쉴 만큼 바쁜 스케줄에 컨디션은 바닥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장으로 온 한국은 찜통처럼 덥다. 작고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몇 달에 걸쳐 열심히 준비한 행사에도 악착같이 우리 곁에 붙어 떠나질 않는 코로나 때문에 하나둘씩 변수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뻐하기로 한다. 톨스토이가 남긴 말처럼, 나 스스로 기뻐하기로 이미 마음먹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기뻐하느냐 인데, 이게 참 쉽지가 않다. 일부러 억지웃음을 지어 보기도 하고, 솟아나는 답답함을 참아보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기도 하지만 결국 기분전환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오래 전 봤던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는 타임루프에 빠진 주인공 폴이 나오는데, 감옥에 갇힌 듯 같은 하루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그가 수많은 감정의 변화와 좌절을 반복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결정한 것은 바로 다른 이들을 돕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폴이 본인의 지루한 하루에 대한 불평을 멈추고, 마주치는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가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발견한다.

기뻐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는 누구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나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내일을 붙들고 사는 것을 멈추고,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잠깐의 상상으로 내 안의 무수한 감정들을 날려보내 본다. 나에게 조금 덜 집중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연습, 곧 기뻐하기로 마음먹는 연습.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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