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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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치킨들의 하루

2022-07-28 (목)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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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팬데믹 영향으로 장애인 프로그램 센터가 언제 문을 열지 아무도 기약을 할 수 없는 시기에 마냥 기다릴 수만 없어 아들의 회사에서는 시니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이 어느 집에 들렸을 때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알에서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까만 병아리들을 보았다. 너무 귀엽게 생겨 그 자리에서 나도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아들이 그분들에게 병아리 몇 마리 나에게 팔 수 있냐고 했더니 그분이 알에서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좀 더 키워서 그냥 준다고 했다. 아들에게 고마워하고 있던 차에 잘됐다고 하면서.

그리고 몇 주 후 너무 귀여운 까만 병아리 10마리가 작은 상자에 담겨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 집으로 입양이 된 병아리들은 낮에는 넓은 뒷뜰에서 온종일 풀과 야채를 뜯어 먹고 모이를 먹으며 마음껏 뛰어놀다가 밤이 되면 어린 것들이 스스로들 2층으로 날아 올라가 잠을 잤다.

그 옛날 엄마는 대가족과 농사일을 하며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영양의 보고 계란을 얻으려고 닭들을 키웠다. 그 시기엔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식품이었다. 육류는 더 귀했던 시기, 식물성 단백질은 주로 밭농사에서 나온 여러 가지 콩이 있었다. 그 당시 어미가 된 닭들이 알을 낳기 위해 스스로 부지런히 준비 작업을 시작하고 부엌 한켠에 부드러운 지푸라기를 골라 알이 깨지지 않게 폭신폭신한 쿠션을 만들 때까지 마치 임산부가 산통을 경험하듯 조용하고 차분한 울음 소리를 낸다. 그리고 알을 낳은 후 동네가 떠나갈 듯이 크게 울어 알을 낳았다는 신호를 우리에게 주었다.


어릴 땐 암탉이 어떻게 알을 낳을까에만 호기심을 가졌지 다른 것들은 관찰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집에 입양된 치킨들이 사람들처럼 그들의 언어와 몸짓으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컷이 날개를 약간만 펴고 퍼득퍼득 하며 종종걸음으로 암컷에 접근을 하면 수컷이 암컷 보고 나 너 사랑해라는 표현이고 배고프고 닭장에서 나오고 싶을 땐 수컷들이 장단을 맞추며 한참을 울어댄다. 옛날엔 덩치가 많이 커진 다음 알을 낳았는데 지금 키우는 치킨들은 옛날 치킨들의 반 정도로 작을 때부터 알을 낳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하니 동물들도 사람들처럼 성조숙이 있는 건지 알을 낳을 덩치가 아닌데 알을 낳으니 신기했다. 수컷들은 암컷들에게 잘 보이려고 벌레를 발견하거나 먹을 것이 있으면 암컷들을 불러 먹으라는 신호를 주며 암컷들은 얼른 가서 얻어 먹었다.

수컷들끼리는 절대로 먹이를 나누지 않는다. 힘이 가장 센 서열을 정해 차례로 먹는다. 동물들의 세계는 언제나 위계질서가 힘으로 정해지고 엄하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왕초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면 물어뜯어 피를 흘리게 하고 털이 뽑혔다. 다행히 암컷이 더 많아 죽어 나가는 수컷은 없었다. 아들의 직장동료 집의 수컷 두 마리는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고 죽을 때까지 사투를 하다가 결국 한 마리가 죽었다고 한다. 치킨들도 산속의 법칙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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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연씨는 은퇴 후 꽃밭과 과일나무를 기르는 전원생활을 즐기며 글쓰기를 시작해 2022년 처음으로 자전적 이야기 “뇌와의 전쟁”(북산책)을 출간했다.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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