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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단절과 소통

2022-07-21 (목) 김관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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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솎아서 정리할까, 하고 책장을 둘러보던 중 ‘나가사끼’에 손이 갔다. 한참 전에 상수리 독서모임에서 다루었던 나가사끼는 정리할 책이 아닌 아직도 소장하고 싶도록 아끼는 책이다. 2010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한 ‘나가사끼’는 프랑스 작가인 에릭 파이(Eric Faye)가 일본을 배경으로 일본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우리’는 죽어가고 ‘나’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 중년의 독신 남자다. 그는 세상을 피해 유리관 속에 혹은 은신처며 땅굴이며 아지트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세계 곧 집이 유일한 안식이며 위안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냉장고 안의 야구르트 한 병, 주스 몇 모금이 사라지는 현상에 의혹을 품고 웹 컴을 설치한다. 그 결과 놀랍게도 자신의 아파트에 어떤 여인이 침입하여 1년 이상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역사의 이런 저런 사건에 연류되어 혼자가 된 여자는 끊임없이 ‘우리’속에 흡수되기를 원하지만 그녀를 받아주는 우리의 집단은 없다. 방황하던 여자가 당분간 머물기로 결정한 남자의 집은 여자가 여덟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의 행복한 추억이 있는 부모의 집이었다. 정체가 드러나고 여자는 주거 침입죄로 5개월의 실형을 살고 나온다.


그녀가 감옥에 간 뒤 남자는 끊임없이 어떤 감정에 시달린다. ‘여자의 존재가 일종의 열어젖힌 환기창’이 되어 그는 명료하게 자신의 의식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자신이 변화될 거라는 걸 깨닫는다. 그게 무엇인지 어떤 방식일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수줍은 실존이 인생의 큰 바다로 개방되어 불안정하게 뒤흔들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받는다. 감옥에서 나온 그녀는 그와 만나서 무언가 해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남자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집은 매물 팻말이 붙은 채 비어 있다.

사회로부터 스스로 단절을 고집하는 부류와 소통을 꿈꾸는 이들이 공존하는 세상. 변화를 꿈꾸면서도 변화 혹은 낯선 이와의 연대를 두려워하며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은 남자와 은근히 소통과 합류를 꿈꾸는 여자와의 엇갈림이 쓸쓸한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청소년들 심지어 성인들까지 스마트폰이 곁에 없으면 불안해 하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메시지를 전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절보다는 소통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김관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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