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굳어진 영혼에 새 살을 돋게 하려면
2022-07-08 (금)
스테이시 김(사회복지사)
연세가 드신 분들의 공통된 습성은 반복적인 언어와 행동이다. 청력의 감소뿐 아니라 치매로 인한 기억력 감퇴가 원인일 게다. 그래서 양로원의 필수 덕목은 인내심이다. 매일 대하는 분들에게서 마치 녹음기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으면, 아무리 섬기는 자세로 일을 할 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반응은 지루함, 짜증, 무관심이 되고야 만다. 자식들은 이같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 어머니, 내 아버지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 믿고 싶겠지만, 현실은 너무 비정하다.
누가 자기 옷을 혹은 값비싼 보석을 몰래 가져갔다면서 쉼없이 쫒아다닌다면. 수면제를 아무리 드려도 잠을 못자고 새벽에 일어나 각 방을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린다면. 혹시나 집 밖으로 나갈까 염려되어 문을 잠그면 작은 체구에 어디서 나온 힘일지 문 손잡이를 부숴버리고서 나온다면. 직원들이 제아무리 말려도 듣지 못한 척 딴청을 부리고 손이 몸에 닿기도 전에 오히려 기절한 듯 바닥으로 넘어져 버린다면. 갑자기 창문을 열고 밖을 향해 “살려주세요”를 거듭 외친다면. 다른 사람들의 약을 제 것인 양 모두 입에 털어넣고는 모른 척 약을 달라고 생떼를 부린다면. 음식을 다 드셨음에도 언제 밥을 줬냐면서 배고프다고 불평을 계속한다면. 눈앞에서 뻔히 보고 있는데도 화장실에 가지 않고 그냥 배변을 한다면. 옛날 한국의 주소를 대면서 데려다 달라고 간청을 한다면. 옷을 세겹, 네겹, 아니 여섯겹으로 입고서 더운 날씨에 춥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웃어야 할까 아님 울어야 할까. 백세 시대를 사는 노인들에게 무작위로 무작정 찾아올 수 있는 치매라는 적(敵)에 대응할 최선의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며칠 전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가슴이 뭉클한 기억이 있다. 발달장애인 영희는 동생 영옥이가 그리울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지적장애자인 그녀에게 다가온 십대, 이십대, 삼십대의 동생 모습은 그리움이 승화되어 그려진 감동 그 자체여서 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안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또 근간에 지인이 보내준 동영상이 있는데, 강아지, 고양이뿐 아니라 닭, 오리, 사자, 코끼리, 돼지, 돌고래, 물고기, 염소, 말 등등 그야말로 호흡하는 생명들과 손과 입을 맞추며 사랑의 교감을 그려낸 거였다. 역시 우리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거다. 말로 표현 안해도, 그림이던 노래이던 살갗의 접촉이던간에, 마음을 사랑으로 빚어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굳어진 영혼을 녹여내고 새 살 돋게 할 기적을 연출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일 듯하다.
<스테이시 김(사회복지사)>